[제17화] 싱거운 라떼에 담긴 달콤한 신앙 고백

쿤띠아의 서툰 라떼가 전해준 복음의 향기

by 임래청
싱거운 라떼에 담긴 달콤한 신앙 고백

킬링필드라는 고통의 끝자락에서, 나는 이 땅의 아이들이 다시 피어날 꿈을 꿋꿋하게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 꿈을 발견하고 함께 키워나가는 조력자가 되기로 하였다. 그 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매가 바로 쿤띠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쿤띠아는 당당하게 시내의 카페에 취직했다. 가족의 생계를 돕는 첫 직장,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곧 큰 문제가 생겼다. 쿤띠아의 근무 스케줄 때문에 주일에 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늘어난 것이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자매에게 신앙의 성장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쿤띠아의 자리를 비워두고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첫 직장의 중요성을 알기에, 차마 '그만두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나와 아내는 쿤띠아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갔다. 쿤띠아는 갑자기 놀라면서도 수줍어했다.

스크린샷 2026-02-06 174227.png 캄보디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킬링필드의 후예들이 꾸는 위대한 예배자의 꿈

“쿤띠아, 주일날 두 번이나 예배에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서 왔어.”

아내와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동행한 리더 호안도 망고 주스를 시키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거들었다. “목사님 커피는 정말 맛있게 내려야 해. 우리 목사님 커피 전문가시거든!”

큰 유리컵에 넘치도록 담긴 아이스커피의 색감이 참 고왔다. 아내가 주문한 카페 라떼 위에는 촘촘한 밀크 폼으로 그린 나뭇잎 한 잎이 예쁘게 앉아 있었다.

“와, 정말 예쁘다! 이거 쿤띠아가 직접 만든 거니?”

아내의 물음에 쿤띠아 대신 호안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네, 쿤띠아가 직접 연습해서 만든 거예요.” “와우! 이 정도로 예쁘게 만들 수 있으면 나중에 카페 사장 해도 되겠는걸?”

칭찬을 건네고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호안과 쿤띠아의 눈동자가 긴장한 듯 나를 향했다. “음… 커피 향은 나는데, 커피 마니아 입맛에는 조금 싱겁구나.”

쿤띠아의 얼굴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국처럼 전문 바리스타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고, 분명 어깨너머로 서툴게 배웠을 터다. 게다가 커피 맛을 모르는 자매가 고객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쿤띠아의 정성을 생각하며 그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남김없이 비워냈다.

“쿤띠아, 그런데 말이야. 네가 주일에 오지 못하니 호안 언니가 초등부와 청소년부 반주까지 도맡아야 해서 마음이 참 아프구나. 사장님께 다시 한번 잘 말씀드려 봐. 주일은 꼭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이야.”

쿤띠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쿤띠아 또래의 청년들이 사회로 나갈 때면 선교사들은 흔히 몸살을 앓는다. 수년 공들여 양육한 학생들이 생계라는 벽 앞에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그들에게 선교사로서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내와 나는 주변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곳에서 쿤띠아의 두 손을 꼭 잡고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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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자매 쿤띠아가 피워낸 복음의 향기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 문을 열고 활짝 웃는 얼굴의 쿤띠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흙먼지를 뚫고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내민 야생화 같았다. 쿤띠아는 곧장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힘차게 반주를 시작했다. 서툰 손놀림이었지만, 그 건반 하나하나에는 ‘내가 이곳에 있음이 기적’이라는 간절한 신앙 고백이 실려 있었다.

캄보디아 사역의 본질은 거창한 힘으로 상처를 덮는 것이 아니다. 쿤띠아처럼, 청년들이 희망을 선택할 자유를 얻고 신앙 안에서 꿋꿋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물과 빛'을 제공하는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통을 이겨낸 야생화가 풍기는 향기처럼, 쿤띠아의 반주 소리는 이 땅의 절망을 걷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복음의 증언이었다.


나는 리더들에게 항상 강조한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지라도 사장님에게 당당히 말하라고 말이다. “주일은 예배를 드려야 하기에 쉬어야 합니다.” 설령 그 대가로 월급이 조금 적어질지라도, 예배가 인생의 최우선 순위임을 멈추지 않고 가르친다. 이제 그 결실이 맺혀 우리 리더들이 스스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며, 암노스 리더들이 함께 꾸는 위대한 꿈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