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증명하는 선교를 넘어
200만 명의 피로 물든 땅
킬링필드의 그림자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 땅의 깊고 찢어진 상처를 상징한다. 200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이 학살당한 비극은 여전히 캄보디아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두려움과 불신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영혼들은 겉으로 웃고 있지만, 내면에는 치유되지 않은 피의 흔적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사역의 중심을 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에 두었다.
선교는 숫자가 아니라 양을 돌보는 일
사역을 마친 단기 팀들이 떠날 때 종종 묻는다. “선교사님, 이 아이들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들은 호기롭게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을 책임지겠다고 제의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일시적인 후원은 사역에 예기치 못한 무게가 되어 돌아온다. 차라리 “선교사님, 수고 많으셨어요. 기도할게요.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의논해 주세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내 마음은 훨씬 편하다.
사역 중에 겪는 인간적인 배신감, 후원 문제, 그리고 낯선 땅에서 홀로 서야 했던 고독은 나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와 쓴 뿌리를 남겼다. 때로는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하는 회의감에 무너지기도 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가장 낮은 곳, 가장 찢어진 상처를 통해 흐르기 때문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이 말씀처럼 주님의 상처가 우리의 치유가 되었듯, 나의 아픔 또한 이 땅을 향한 거룩한 통로가 됨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매 순간 나를 위로하고 회복시켜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이 외로운 땅에서 진즉에 질식하고 말았을 것이다.
양의 젖을 탐하지 않는 목자
나는 늘 아내에게 말한다. “나를 위한, 우리를 위한 선교를 하면 안 돼요. 선교는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내주신 양들을 온전히 돌보고 키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선교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양의 젖만 탐하는 마음이다. 사역이라는 명분으로 양들을 쥐어짜고 있지는 않은가? 진짜 목자는 양을 건강하게 키워 그 젖을 기쁘게 나누어 먹는 사람이다. 단기 팀의 일시적인 돈은 아이들을 '자립하는 양'이 아니라 '구걸하는 양'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나는 우리 부부가 돌보는 아이들이 스스로 짠 젖을 내밀며 “목사님, 드세요”라고 말하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필드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