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내 기억의 첫 월드컵은 한일 월드컵이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땐 전 국민이 들떠있었다. 어린 나이라 크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2002년의 여름은 몸과 마음이 뜨거운 날들이 많았다. 태극기로 페이스 페인팅도 하고, 거리에 나가 밤늦게까지 응원을 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친구들도 축구 이야기만 했었던 시절. 20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에서 월드컵을 보고 있다. 캐나다 시간으로 새벽 5시에.
월드컵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와 비겼다. 우루과이는 제1회 월드컵을 우승한 나라이자, 전통적으로 축구를 잘하는 나라이기에 졸전이 예상되었다. 사실 우루과이 승리가 정배였다. 하지만 축구공이 둥근 것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 우리나라가 공을 점유한 시간들이 많았고, 골에 근접한 기회들도 많이 만들었다. 물론 골대 2번이나 맞는 위험한 상황을 우리도 맞이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는 0:0. 우리가 못해서 아쉽다는 감정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비겨서 생기는 아쉬움이었다.
인스타에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스토리를 업로드했다. 한 때 같이 일했던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수비수들은 왜 다 Kim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축구를 볼 때는 다 김 씨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름과 성으로 인식했기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골키퍼까지 김 씨이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그리고 농담 삼아 Kim들이 수비를 잘해.라고 보냈다. 그는 웃으면서 한국이 생각보다 잘해서 놀랐다고 내게 말했다. 나도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고 했고, 그는 한국에게 행운을 빈다고 전했다.
월드컵에서 첫 경기를 마치고 이런 좋은 기분을 맞이하는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선수들의 진심이 느껴졌고, 그들의 온전한 열정이 경기장에 툭툭 튀어나왔다. 보는 내내 감탄했다. 패스는 정확했고, 빼앗긴 공을 되찾아 오겠다는 모습은 냉정했다. 그리고 수비수 4명의 김 씨들을 보면서 축구 격언이 떠올랐다.
공격을 잘하면 승리를 하고, 수비를 잘하면 우승을 한다.
물론 우승을 기대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수비를 잘한다면 최소 패배는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여준 한국의 수비진이었다. 누네스와 수아레즈는 번번이 수비에 막혀 공허한 표정을 연속해서 보여줬다. 앞에 4명의 Kim을 벗겨내면 또 다른 Kim이 뒤를 지키고 있다. 우루과이는 에디손 카바니 선수까지 투입하며 골을 넣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지만 4명의 김 씨들을 뚫기는 힘겨웠다. 10번 잘하다가 1번 실수를 하면 욕먹는 포지션인 수비수. 이런 부담감을 이겨내고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축구팬으로서 기뻤다.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줬던 경기력을 가나 전에서도 보여준다면 승리를 기대하기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