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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Dec 01. 2022

진정한 축구팬이란 무엇인가?

Life in Canada

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가나와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아쉽게 패배했다. 0:2로 뒤진 채 아쉬운 전반전을 맞이했던 대한민국. 이강인 선수가 교체 투입되면서 경기 흐름이 바뀌었다. 조규성 선수의 환상적인 헤더 2골로 분위기를 가져온 대한민국. 동점골이 들어갔을 땐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떠오를 정도로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달아나는 골을 넣은 가나. 경기 막판 많은 크로스를 올리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한국에게 마지막 코너킥 찬스를 주지 않고 주심은 휘슬을 불어버렸다. 


앤서니 주심에게 코너킥을 왜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던 감독은 퇴장을 당했고, 다음 경기 밴치에도 앉지 못하게 되었다. 밴투감독은 월드컵 역사상 1호 감독 퇴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주심은 오늘 본인이 월드컵 역사의 주인공 되고 싶어 한 것으로 보였다. 감독에게 1호 퇴장을 준 주심으로서. 앤서니 주심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문제가 많던 주심이었는데, 어떻게 월드컵 주심이 될 수가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전 7시. 가나전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7시였다. 출근 준비를 했다. 축구는 끝났지만 내 삶은 휘슬이 울렸다. 하지만 샤워를 하면서도 화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축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 마지막 코너킥을 얻었더라면 어땠을까? 수많은 크로스 중 하나만이라도 골로 연결되었더라면, 동점으로 경기를 마치고 포르투갈 우루과이 경기를 지켜봤더라면. 여러 가지 만약이 떠올랐지만 1무 1패라는 냉혹한 결과만이 남아있다. 우리에겐 익숙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할 시간이 왔다.


편의점에 오는 캐나다인 손님들에게 월드컵에 대해 물었다. 10명의 8명은 안 봤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축제인 월드컵에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돌아온 대부분의 답변은 자신은 하키, 미식축구를 주로 본다. 아니면 스포츠를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채식주의자 사람들 속에 유일하게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월드컵을 보는 캐나다 축구팬을 만났다. 이름은 마이클. 나를 보자마자 한국이 져서 유감이라고 해줬다. 나는 심판 판정이 아쉬웠고,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나도 캐나다가 탈락해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벨기에와 크로아티아에게 패해 2패로 일찌감치 16강 탈락을 확정 지었다. 스코어는 각각 0:1, 1:4 2경기에서 1골 5실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마이클의 답변은 참신했다.


"1골 넣은 것만으로도 만족해. 그 골은 우리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이었어. 36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골 넣은 것만으로도 기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항상 C학점을 받던 학생이 처음으로 B학점을 받은 느낌인 것일까? 그것도 전체 성적이 아닌 여러 과목 중 하나만 B만 맞은 느낌. 물론 캐나다에서 축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많지 않아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한 스포츠 팬이라면 가져야 하는 자세임은 틀림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나와 경기가 끝나고 손흥민 선수나, 김진수 선수 등 국가 대표 선수들 SNS으로 가서 악플을 다는 개념 없는 인간들이 떠올랐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악플에 찍힌 좋아요 개수였다. 100개가 넘어가는 것도 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 것일까. 그들은 축구팬이 아닌 그저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고 싶은 공간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은 없기에 그저 인터넷에서만 왕처럼 군림하는 자들.


이런 사람들은 한국에 거주하는 가나 출신 유튜버에게도 인종차별적인 악플을 달았다. 그 유튜버는 사과하는 영상까지 올렸다. 악플러들이 보여준 미개함에 더 화가 났다.


경기 막판 수많은 크로스 중에서 마스크를 쓴 손흥민 선수가 점프를 하는 것을 봤다. 헤더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는 점프를 했다. 잠시 마스크가 벗겨졌다. 손흥민 선수 얼굴 위에 생긴 마스크 자국은 그의 간절함과 부담감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뭉클했다. 축구를 보면서 뭉클한 감정을 느끼는 경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악플러들은 이렇게 간절함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선을 넘는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에게 상처를 내는 댓글을 쓰면서 짓는 표정 또한 궁금하다. 그렇게 악플을 달아서 본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포르투갈 경기가 남았다. 피파 랭킹 9위인 포르투갈을 이겨야 하는 상황이기에 사실상 16강으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겼고, 이번 월드컵에서는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겼던 것처럼 월드컵에서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설령 16강 진출이 좌절된다고 해도, 이렇게 추운 겨울날 우리에게 잠시나마 뜨거움과 짜릿함을 선사해준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반대로 따뜻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축구팬은 이겼을 때뿐만 아니라 졌을 때도 응원하는 것임을 안다. 우리가 축구를 사랑한다면 편의점에 손님으로 왔던 마이클처럼 대표팀을 격려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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