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다소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날들이 있었다. 그저 관성대로 몸을 일으키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갔던 날들. 마침표 없는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날뛰었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살아가던 때, 답이 없는 질문들만 물고 늘어졌다. 머리는 복잡했고, 행동은 느려졌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그저 서성이기만 했다. 고여있는 기분을 느꼈다.
방 안에서 창 밖으로 시선이 갔다. 담담하게 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가 꽤 왔지만 이곳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사람들은 다른 이유가 아닌 산책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밖으로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왔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작은 우산을 하나 챙기고 비 오는 날 산책을 시작했다.
그냥 걸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비를 쓰고 나온 아저씨, 아기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그 누구도 우산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캐나다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문화는 우산 없이 비 오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었다.
맑은 공기 사이로 비가 내렸다. 허공을 가르는 비는 꽤나 차가웠다. 그래도 걸었다. 복잡했던 생각의 꼬리들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했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선언 같은 노래보다는 읊조리는 노래들.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집중하게 되는 노래들이 필요했다.
걷다가 바라본 고풍스러운 카페. 주저하다 들어갔다. 직원들은 비에 젖은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비구름 사이로 빼꼼 나온 붉은 햇빛을 바라본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점원에게 커피를 받고 거리로 나온다. 좁은 방 안에서 무슨 생각이었길래 표정이 무거웠을까. 약간의 햇빛, 적잖이 불어오는 바람, 오른손엔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자니 머릿속에 있던 고민은 단 한 번의 한 숨으로 흩어졌다.
몇 주를 반복해서 걸었다. 걷기가 주는 위로가 있었다. 이제는 조금만 머리가 복잡해지면 밖으로 나간다. 내 발 모양을 기억하는 운동화를 신고 나간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부지런히 쌓아둔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무너진다. 잔잔하게 분위기 잡힌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다. 자연스럽게 걷는 거리도 늘어났고 당기는 근육들도 많이 사라졌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결국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걷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걷는 것만으로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본 책 중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믿지 마라' 나는 내가 생각해 낸 생각들이 대부분 옳다고 믿었었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일수록 말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고, 지나고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일이 아니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믿을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 내 걷기의 도착지였다.
집으로 돌아왔다. 젖은 옷 더미들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온수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꼈다. 부정적인 마음을 잘 재활용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