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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un 27. 2023

동네 한 바퀴는 핑계고

돌아온 한국 이야기

오랜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한창 인생을 설계하느라 바쁜 친구들. 나의 귀국 소식에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았다. 우리가 늘 가던 삼겹살 집으로 갔고, 소주도 마셨다. 삼겹살집 이모도 나를 반겨줬다. 캐나다에 잘 다녀왔냐고. 우린 얼큰해진 얼굴로 늘 가던 맥주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엔 우리가 알던 맥줏집 대신 체인점 술집이 들어섰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술집으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만나 철없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약간 모자란 대화들을 나눴다. 실없는 농담과 툭 튀어나오는 웃음들. 같이 웃고 떠들다 보니 긴 공백을 뚫고 친밀감이 솟아났다. 마지막 적당한 진지함이 묻어나는 대화들까지. 진지한 대화들 속에는 마냥 웃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숨어있었다. 우린 대화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동네가 많이 변했다는 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않냐는 표정으로 우린 맥주를 마셨다. 그전과는 다른 표정들. 가게를 나오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뜨는 해를 보고도 멀쩡했던 친구들은 12시가 되자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동네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캐나다를 가기 전까지 평생을 살았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도 변했다. 사람도, 동네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공사 중이던 동사무소는 어느새 완성이 되었고, 한 자리를 지켰던 소방서는 허물어졌다. 자주 가던 맥줏집도, 학창 시절 자주 가던 피시방도 사라졌다. 헤어진 그녀와 갔던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그 시절에 자주 가던 맛집도 사라졌다. 달라진 건 비단 내 친구들의 표정만은 아니었다.


살다 보면 그때 당시로 돌아가게 만드는 추억의 문고리 같은 것들이 생긴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했던 과거로 통하는 문. 그 문은 음악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다. 때론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 멜로디를 들었을 때, 어떤 향을 맡았을 때, 그곳에 내가 서 있을 때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 이러한 기억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밀려오는 파도를 받아들이듯 나는 천천히 잠긴다.


고향으로 돌아온 기쁨과 이름 모를 쓸쓸함이 적절히 뒤섞여 내 발끝에 남아있다.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들 아래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듣던 플레이 리스트를 바꿨다. 지르는 노래가 아닌 읊조리는 노래로. 가사를 말하듯 부르는 노래들. 이제 비가 올 것 같은지 꿉꿉한 냄새가 진동한다. 문득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두 방울 비가 떨어진다. 다시 현재의 문고리가 열린다. 이렇게 동네 한 바퀴를 걷다 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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