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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4. 2023

엘라의 스페인어 듣기 시험

엘라의 스페인어 듣기 시험감독을 했다. 이 학생은 청각에 문제가 있어 듣기 시험을 오디오 파일로는 볼 수가 없어서 스페인어 담당 교사가 시험에 들어와 문제를 읽어주면 학생은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입모양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여 답을 적는다.


담당 교사는 지시사항을 준수하여 시험 감독관용 스크립트를 그대로 읽어 내려간다. 오디오 파일을 듣고 강당에서 시험 보는 학생들에 비해 엘라의 듣기 시험은 20분 정도 일찍 끝났다. 선생님이 읽는 속도가 조금 빨랐을 수도 있지만 엘라가 답을 쓰고 고개를 끄덕이면 선생님은 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에 오디오파일에 녹음된 문제 사이 쉬는 시간은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스페인어 선생님의 발음에 같이 있던 나도 매료되어 잠시나마 '스페인어를 배워볼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엘라가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수업을 듣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엘라는 일상적인 대화가 일반 사람들처럼 가능하다. 단순히 오디오 파일만으로 알아듣기에는 문제가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 독방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다. 엘라는 엄마학생 때  편지를 주고받던 프랑스 펜팔의 딸과 자기도 펜팔을 주고받았었고 여름방학 때 그곳에 가서 일주일 있다 온다고 신나 했다.


외국어 시험은 보통 Higher 레벨과 foundation레벨이 있는데 엘라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모두 higher level을 하고 있고, Sixform(2년 동안의 대학입시 준비과정)에서도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를 선택했다고 했다. AI 세대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외국어 배우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거들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남들에게 닫혀있는 문이 나에게는 활짝 열리는 그런 기분이라고. 내가 중국어를 배웠을 때도 그랬고 영어를 하고 있는 지금도 늘 그렇게 느끼고 있다.


'듣기 평가를 못하면서 외국어를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선생님이 읽어주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으면 학생입장에서 뭔가를 배우고 터득하는데 제한을 두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엘라는 하나의  외국어도 모자라 두 개나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국사람들이 자주 하는 Why not 의 마인드가 아닐까 한다. 학생이 외국어를 선택했는데 청각에는 문제가 있고 시험은 봐야 하고.... 그럼 스페인어 선생님이 앞에서 읽어주고 시험을 보게 해 주면 되지 뭐. 감독관도 같이 앉아있는데 안될게 뭐야 why not?


아이가 어려서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떤 발품을 팔거나 시간을 써서라도 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고 우린 그렇게 아이들을 키운다. 아직 성년이 되기 전인 학생들을 위해 학교가 사회가  책임지고 도와줘야 하는 일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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