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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7. 2023

기절 또 기절, 엘레노어

시험 3주 차의 마지막 금요일.

오전엔 지리시험이 있었고, 오후에는 생물시험이 있었다.

지리는 선택과목이지만 생물은 공통과목으로 모두가 시험을 봐야 한다.

내 담당 한나는 이날 생물 시험만 봤다.


영국이 이상기온으로 갑자기 온도가 올라가 상당히 더웠다. 어제만 해도 추워서 겨울스타킹을 신고 출근는데 말이다. 한나가 제시간에 와줘서 나는 시험 개시를 알리고 한나는 골몰하며 시험을 보고 있었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놨는데 유난히 밖에서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서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는데 창밖으로 맞은편 건물 유리에 비치는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누군가는 의자에 앉아있었고 바닥에 이불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40분 정도 있다가 누군가 의자와 담요 등을 챙겨 들고 학생 한 명과 맞은편 건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어떤 학생인가 보려고 하는 찰나 몇 걸음 걸어보지도 못하고 바로 얼굴을 바닥으로 향한 채 퍽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의자를 들고 있던 선생님은 바로 그곳에 다시 의자를 놓고 쓰러진 학생 주변에 쿠션과 담요를 대주었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 달궈진 콘크리트바닥에 내가 시험을 마칠 때까지 그 학생은 그대로 엎드려져 있었다. 가끔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리거나 머리 부분을 흔들어대는 것이 보였다.


학생이 그렇게 그곳에 기절해 있는 사이 그녀 옆으로는 공사장 봉고차들이 지나다녔고, 사이트팀 앤디는 휴지를 줍기 위해 구르마를 끌고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었으며, 마침 점심시간 이후라 갈매기 때들과 까치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나의 시선은 계속 밖을 향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교실이동 시간에 그 길을 지나가는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향했다. 그러다가 딸아이와 친구들이 우르르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집에 와서 물으니 보고서 놀랍기는 했지만 일부러 시선을 두지 않으려 했고, 친구들이 웅성대며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저게 너라면 다른 학생들이 그렇게 쳐다보는 게 좋을 것 같진 않아. 그만 보자 우리!'라고 친구들의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했다.


한나는 오늘도 1시간 45분인 시험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일찍 시험을 끝냈다. 시험지를 챙겨서 나오는데 1번 시험교실에 엘레노어와 감독관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는데 마침 엘레노어 감독을 하는 케이티가 담요와 애착인형을 들고 혼자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밖에 쓰러져 있는 아이가 엘레노어냐고 물으니 맞다고 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엘레노어는 한나와 마찬가지로 비간질성발작증상을 가지고 있는 학생으로 한나의 경우는 경미하지만 엘레노어는 가장 심각한 학생 중에 한 명이다. 시험 중에 엠뷸런스가 온 적도 있다. 그리고 시험 시간이 보통 학생의 몇 배는 더 걸린다. 시험 보는 교실에서 발작이 여러 번 온 적도 있었고, 시험을 지속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청해서 감독관과 함께 학교 뒷숲으로 가서 이삼십 분 정도 있다가 오는 것이 시험의 루틴이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 건물 입구로 걸어오다 거기서 그만 쓰러져 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정신을 차려 다시 몇 걸음 옮겨보지도 못하고 그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에 다시 쓰러져 시험교실에는 와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시험을 포기하게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엘레노어는 이 한 달간의 시험기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픈 기억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엘레노어 본인, 학생캐어선생님, 전담했던 감독관 케이티와 레베카, 시험매니저 그리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을 가족들과 함께 최선을 위해 노력하며 끌고 나갔던 짧은 여행쯤으로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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