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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08. 2023

시네드(Sinead) 길들이기

영국에서는 올 들어 여러 번 교사들의 처후개선 및 인플레이션 대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진행 중이다. 노조에 속한 교사들은 해당일에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을 커버할 교사들이 많이 필요해 나에게 까지 수업 요청이 온다. 지난번 파업날은 금요일이었고 마지막 수업이 8학년(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 수학 수업이었다.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보통 한 반에 많으면 3~4명 정도 물을 흐리는 애들이 있는데 이 반은 거의 반 이상의 아이들이 나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각자 떠들거나 노래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간신히 출석을 입력하고 수업 안내를 하는데 여전히 학생들은 나의 말에 전혀 집중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작정하고 말썽을 피워보자고 결심들을 하고 들어온 듯했다.


그래서 몇몇의 학생에게는 벌점카드를 주었는데 그런 것에 익숙한지 학생들은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교실 뒤 쪽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나는 듯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하니 학교 안에 아이스크림 트럭이 들어왔나 보다며 딴청을 피운다. 그리곤 멜로디가 멈췄다. 내가 뒤쪽으로 다가가면 음악소리가 꺼지다가 다시 켜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시간을 채우고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얌전한 학생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음악소리 어디서 난 것 같냐고... 그러니 맨 뒤에 앉은 시네드가 그런 것 같다고 작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렇게 난 그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말았다.


오늘도 파업이 있어서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학교에 가서 커버수업 시간표를 받았다. 그런데 또 그 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영어수업으로 Katherine Johnson에 대해 조사해 보고 그녀의 인생에 대한 시를 쓰게 하면 되는 수업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출석을 불렀다. 출석을 부르는데도 벌써 손을 드는 학생에 노래하는 학생에... 걱정을 잔뜩 하고 들어왔는데 역시나였다. 그래서 나는 출석을 마무리하고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뒤,  


'자, 모두들 조용히 해. 손들어도 소용없어. 내 말 다 끝나고 들어줄게. 지난번 너희들 나 본 적 있지. 수학수업 말이야. 내 커버수업 경험상 그날 너희 반이 최악 중에 최악이었어. 하지만 난 오늘 그건 다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난 알아. 너희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오늘 해야 할 일을 집중해서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또 각자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벌점카드 여분으로 가져온 걸 흔들어대며 


'난 정말이지 오늘은 이 벌점카드 쓰고 싶지 않아. 그러니 알아서 다른 학생들 피해 주지 말고 해 보자!'


그런데 갑자기 시네드가 앞에 앉아서 빨대를 소란스럽게 빨아대며 물을 마신다.

'다른 아이들이 물을 너처럼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너 스스로도 좀 지나치다 생각 들지? '라며 시네드드와 눈을 맞추었다. 그랬더니 빨대 빠는 소리가 서서히 줄어든다.

'앞으로도 그렇게 물을 마시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랬더니 그 뒤로는 물을 조용히 마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또 손을 든다.

'미스, 제가 친구한테 설사를 옮아서 설사병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 화장실에 가야 해요.'그러면서 주변 시선을 계속 의식하며 웃으며 말을 한다. 그래서 화장실에 보내며 빨리 다녀오라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네드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며,

'화장실에 갔는데 누가 변기에 똥을 마구 묻혀놔서 그걸 사진 찍어왔어요. 보여드릴까요? 이따가 반 그룹채팅방에 올려야지'라며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그런 거지 그것도 아니면 혼잣말인지 모르게 계속 떠들어댔다. 

'시네드, 아무도 관심 없어. 그만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난 시네드 네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할 수 있지?'라며 빈 종이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그 아이와 잠깐의 눈 맞춤을 하며 따뜻한 응원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게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네드가 종이에 캐서린 젠킨스에 대한 시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커버수업 지침에는 없었지만 마지막 10분은 각자 쓴 시를 발표해 보자고 제안했다. 어떤 학생들은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각자의 파트를 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발표를 했다. 어떤 학생은 하이쿠 운율에 맞춰 시를 썼다. 갑자기 시네드가 자기도 발표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시네드를 응원하며 시를 다 쓰면 말하라고 했고 시네드가 앞에 나와 자기가 쓴 시를 읽어 내려갔다. 난 너무 잘했다며 박수를 쳤고 벌점카드 뒷면의 칭찬카드에 good work! 이라며 서명을 해줬다. 그리고 물었다.

'너무 잘했다. 커버수업에 이렇게 뭔가를 해보긴 처음이지? 기분이 어때?'

'네, 맞아요. 처음이에요. 스스로가 조금 자랑스러워요'

'거봐, 오늘 엄청 잘했어. 다음에도 그렇게 할 수 있어. 넌 충분히 할 수 있는 애야.'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미스 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누군지 아세요?'

난 시네드가 나라고 할 것 같아 얼른 말을 잘랐다.

'알았어. 다음에 또 보자'


이렇게 그 수업을 마쳤다. 물론 시네드 말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다를 떨거나 멍을 때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커버수업에서는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학생을 지도한다. 그래서 오늘은 시네드 입을 닫게 하고 글쓰기를 하게 한 것 하나만으로도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출석부 시네드 이름 옆에는 D(Detention)라는 빨간 글자가 붙어있다. 바로 방과 후 교장실이나 주임선생님들 방에 30분 앉아있는 벌을 받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생각하는 의자와 맥락이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거기 앉아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의도인 것 같다. 디텐션을 주기 전에 반드시 부모들에게 연락을 한다. 이러저러해서 당신의 딸이 점심시간 또는 방과 후 벌을 받는다고. 그러면 어떤 부모들은 또 항의를 한다. 그까짓 것 가지고 아이에게 벌을 주는 것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고...... 우리 아이는 집에 와서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우리 아이가 그런 잘못을 할 일이 없다고......


내가 오늘 본 시네드는 주위의 관심에 굶주린 아이 같아 보였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아무 행동이나 해서 주의를 끌고 싶어 모든 선생님들의 블랙리스트가 된 것이다. 오늘 내가 시네드에게 보인 선의의 관심이 그래서 통한 것이다. 내가 지속적으로 눈을 마주치며 관심을 가져주니 시네드가 그것에 화답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안다. 다음번엔 이것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오늘 거둔 성과에 만족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다음번 커버수업 할 때 그 반에 들어가게 돼도 오늘처럼 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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