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람들을 만나면 나에게 묻는다. 넌 할 줄 아는 언어가 몇 개니? 그럼 나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라고 하면서 세 개의 언어가 다 고만고만한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럼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은 "We are too lazy to learn different languages."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성을 못 느끼니 배울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면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 영어 배워가지고 오는데 너희들이 뭐 굳이 다른 나라 말을 배울 일이 있니?라고 말한다. 그래머중등학교에서는 첫 3년 동안은 두 가지 유럽언어를 배운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이고 남자 학교의 경우는 라틴어까지 한다. 학교에 있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선생님은 대부분 현지에서 오신 분들이다. 영국사람이면서 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별로 없다. 물론 본인이 흥미가 생겨 외국어를 배우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처럼 생존전략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줄을 잘 선다. 무엇을 하든 줄을 선다. 초등학교 하교시간이 가까워오면 초등학교 대문부터 시작해서 길게 학부모들의 줄이 늘어선다. 영국에서 새치기는 아주 혐오대상이다. 그래서 어딜 가든 줄이 있는지 살피고 본의 아니게 새치기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프랑스에 여행 갔을 때 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다행히 그곳 주인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남편과 나는 영국과 비교해 프랑스가 정말 너무 아름답고 살기 좋을 것 같다고 하니 하는 말이 본인은 영국의 질서를 좋아한다고 했다. 프랑스는 시내에 영화만 보러 가도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티켓팅을 하고 소란을 피울 때가 있어 본인은 가끔 런던 출장 갔을 때가 그립다고 했다.
시누이 집에 갔을 때 감을 껍질째 사과 먹듯이 먹는 것을 보고 놀라서 남편이 "그거 껍질 벗겨 먹는 거야"라고 하니 가르치려 드는 오빠가 거슬렸는지 시누이는 "우린 여기서 이렇게 먹어" 라며 냉소적으로 받아쳤다. 그리고 그다음 해 감이 나오는 시즌에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였었다. 난 디저트로 감을 깎아 내놓았다. 모드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과일처럼 맛있다고 금세 비웠다. 시누이도 시누이 딸도 이게 무슨 과일이냐며 물어보았다. 그래서 감이라고 하니, 감이 원래 이런 맛이었냐며 감탄을 했다.
배도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는다. 한 번은 큰 시누가 6살 딸아이에게 싸준 도시락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도시락 가방 안에 깎지도 않은 키위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최소한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퍼먹게 했으면 먹을 수 있는 것을 그렇게 싸주며 아이가 먹기를 바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제이미 올리버라는 셰프 프로그램을 한국에 있을 때 한때 즐겨 본 적이 있다. 그때 내 눈에 포착된 것은 대부분의 야채를 씻지 않고 그대로 요리에 잘라 쓴다는 것이었다. 설마 씻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영국 요리 프로그램을 봐도 씻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 같은 모습을 본적이 많다. 우리나라 요리프로그램은 재로 씻는 것만 보여주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비해 영국은 아예 씻기 자체를 생략하는 건지 아님 씻기는 하되 중요하지 않으니 방송에 보여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레몬으로 칵테일을 만들어 먹을 때도 레몬 사온 그대로 슬라이스 해서 그냥 술에 퐁당 빠트려 먹는다. 블루베리, 라즈베리, 딸기, 방울토마토 같은 과일은 그냥 포장지 뜯어서 바로 먹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과일에 약을 많이 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고모부는 과일농장에서 일하는데 딸기고, 블루베리고 그냥 바로 따서 먹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고 했다. 시댁 식구들 통틀어 우리만 과일을 씻어 먹는다.
설거지는 세제를 푼 거품물 안에서 수세미로 닦아낸 뒤 그대로 건져내서 주방 타월로 닦아 내면 끝이다. 그래서 영국사람들은 설거지를 둘이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은 거품물에서 건져내고 다른 사람은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타월로 닦아서 싱크대 곳곳에 넣는 것을 담당한다. 그래서 영국 프로그램을 보면 두 사람이 누가 씻을 건지 누가 닦을 건지를 결정하는 것이 종종 보인다.
시어머니왈 "그래도 여태껏 이것 때문에 죽은 사람 있단 얘기를 들어본 적 없으니 된 거 아니냐" 이 말을 남편과 함께 들었다. 시어머니 집에서 내가 설거지하는 것을 보시고 속으로는 물을 저렇게 낭비하나 생각하셨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한 번도 너는 설거지를 왜 그렇게 하니?라고 물으신 적 없다. 우리도 그래서 그 뒤부터 영국 가족들이 하는 생활방식이 우리의 방식과 다르다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영국사람만 그런 줄 알았는데 프랑스로 캠핑 가서 본 독일, 네덜란드 사람들 모두 그런 식으로 설거지를 했다. 캠핑장에서 고무장갑까지 끼고 아주 오래 물을 흘려보내며 설거지하는 유난을 떠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