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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27. 2023

모두 모두 주관식

초등학교 이후의 모든 시험은 주관식이다. 학교에서 수시로 보는 시험은 그렇다 치더라도, GCSE시험은 보통 학생 한 명당 10개가 넘는 시험을 본다. 그렇다면 전국의 11학년 시험지가 어마어마한데 그것을 누가 다 채점할까? 그러나 가능하다. 문제은행에서 따로 고용한 채점자들이 있고, 또 교사들 중에 여름방학 동안 채점을 하며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모의고사는 학교 교과목 선생님들이 학기중에 체점을 한다.


문제수가 우리나라보다 적지만 모두 서술형으로 작성해야 한다. 영어시험지는 문제 하나당 한 페이지에서 여러 페이지까지 답을 적을 수 있게 시험지가 인쇄된다. 그래서 영국의 시험지에는 답지가 따로 없고 시험지 자체에 답을 적게 되어있다. 그래서 평소 과목별 숙제도 모두 주관식 서술형이다. 남편은 퇴근할 때 마치 드라마에서 퇴사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을 법한 상자에 채점할 시험지를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온다. 설사 집에서 채점을 하지 않더라도 가지고 와야 마음이 편하단다.  학기말이 되면 주말이고 저녁이고 채점하느라 정신이 없다. 모든 답을 다 읽어봐야 한다. 글씨가 엉망인 학생들의 시험지는 채점을 포기할 때도 있다. 채점을 하며 일일이 평가도 적어 넣는다.


커버(보강 수업)를 같이 했던 20대의 케이티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지금은 배우가 되기 위해 트레이닝 중에 있으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커버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도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 6개월 정도 있었는데, 시험이 모두 객관식인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학생들의 수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감독을 하면서 가끔 남은 여분의 시험지를 넘겨 보기도 한다. A레벨(대학 입시학년) 수학 문제였는데 문제 하나가 주어지고 그 아래로 두 페이지 정도가 빈 줄노트 공간이었다. 거기에 학생들은 풀이 과정을 모두 적어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사람에 의해 채점된다. 제대로 학교를 마치고 정규 시험을 쳐본 학생들은 논리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슨 과목이 되었든 학생들이 답을 도출해 내는 과정 자체가 논리적인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어 문학 시험문제인데, 문제가 한 페이지에 제시되고 이어서 6페이지나 되는 빈 줄노트 공간에 답을 적어 내려가야 한다. 영어 시험은 보통 1시간 30분 정도 된다.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답을 적어 내려가야 한다. 빽빽하게 적어 내려 간 답지를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감독을 할 때마다 11학년인 큰 딸의 모습이 자주 겹친다. 그리고 공부하라고 너무 닦달한 게 미안해진다. 그러면서 그날 저녁 메뉴를 큰딸이 좋아하는 것(맵고 짠 한국음식)으로 결정하고 나면 그나마 미안한 맘과 안쓰런 맘이 조금 사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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