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결혼해서 바로 일본 왔잖아. 아이 낳고 일본 생활한 지도 어느새 십여 년이 훌쩍 지났더라. 태어난 게 엊그제 같던 우리 애가 몇 달 전부터는 중학교 입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니까. 너무 빠르지 않아? 요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어. 남편이야 뭐 더 늦게 오지.
긴 시간 혼자 있어보는 게 얼마만인지 완전 자유부인이 된 기분이더라고. 처음엔 멀리 살아서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 만나서 천천히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취미 생활도 하면서 신나게 지냈어. 근데 저녁때가 되면 아이는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남편은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중에 살림만 하던 언니들까지 장난감 회사 상품 입력 알바, 의류회사 상품 발송 알바 새로 시작했다고 하지, 너는 또 한국식품회사로 옮겼지,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새로 일 시작하는 분위기였잖아. 그리고 나 요즘 동네 접골원이나, 슈퍼, 병원, 약국에 갔다가 아는 엄마 만나서 서로 깜짝 놀라는 일이 속출하고 있었다고.
"어머! 여기서 일하세요?"
"네, 얼마 안 됐어요."
이런 짧은 인사 하고 나면, '와~다들 열심히 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고 내가 쭉 놀았던 게 아니라는 건 알지? 재택 알바로 한국인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벌써 3년째라고. 인터넷 쇼핑몰에 상품 올리는 단순작업이지만 매달 일정 수입이 될 때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있다 없다 들쭉날쭉 이야. 게다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일을 줄 때도 몇 번 있었어. 그때마다 내 스케줄 미뤄두고 그쪽 편의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 조금 지치더라. 그렇다고 다른 알바를 구하기도 애매하잖아. 몇 년째 일하면서도 사장이랑 담당자는 얼굴 한번 본 게 고작이니 소속감도 없고. 매번 카톡창에 '등록 부탁드립니다'라는 상품 발주 의뢰랑 '등록 완료했습니다'하는 말만 오가. 게다 등록하다 실수라도 생기면 카톡창에서 미묘한 실랑이까지 벌어지니 은근 스트레스야. 밖에 나갔다가도 급하게 수습하러 집에 와야 되고 진짜... 이번에야말로 일주일에 며칠, 하루 몇 시간이라도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일하고, 집에 오면 확실하게 오프로 전환 가능한 알바면 좋겠다 싶었지.
아침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밥하랴 일하러 갈 준비 하랴 분주한 척하면서 남편도 부려먹고, 엉덩이 붙이고 아침 좀 먹어볼까 하는 순간, 지각하게 생겨서 남은 커피 보온병에 담아 다다다다다 현관 밖으로 튀어 나가는 그런 생활이 시작되는 건가? ㅋㅋㅋ 아니, 어차피 우리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갑이잖아. 가끔 나가니까 장난치는 거겠지만, 내가 통역 알바라도 하는 날은 남편이 내 가방을 들고 현관까지 배웅해주면서 쇼와시대(1926년~1989년) 부인들 흉내 내듯이 잇데랏샤이~(잘 다녀오세요~) 한다고. 남편 인사는 보너스라 치고, 안정된 수입 보장에 새로운 경험에 보람차고 좋잖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이제 슬슬 일할 때가 된 거 아니겠어. 일이랑 살림이랑 입시생 된 아이까지 챙기려면 정신없겠지만, 일본에서 파트타임 알바는 시프트 제도가 잘 되어 있으니까 스케줄 잘 짜서 균형을 맞춰봐야지.
그러니까 모든 기운이 '일하자'에 맞춰진 건 같은데, 무슨 일이 좋을까? 아니 뭐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