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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한도시에서 한 달을 살고 싶어 졌을까?

아이들과 한도시 한달살이_Prologue

by limstory

어릴 적 이모집에서 보내던 방학 한 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하던, 그래서 많이 자라오던 시간이었다. 어느 해에는 상주 이모집에서, 또 어느 해에는 부산 이모집에서 겨울방학을 보냈다. 여름이면 이종사촌들이 우리 시골집으로 몰려와 방학 내내 물놀이를 하느라 얼굴이 까맣게 탔던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은, 사촌들과 연락이 뜸해지듯 드문드문 기억나는 일이 되었지만, 항상 '나'의 토대를 이루고 있었던 것 같다. 불행히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방학 한 달 동안 보살펴줄 전업주부 이모(이모가 넷이나 되는데도..)가 없고, 다행히도 나는 아이들과 방학을 보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 달간 여행을 가자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나에게 방학은 input의 시간이고, 아이들에게 방학은 pause의 시간이어야 했다.

남편은 10일의 휴가를 내기도 버거운 일반 직장인이다. 한 달간 '여행'을 간다면 나 혼자 먼 타국에서 초6, 초3 두 아이를 돌보며 여행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고, 그런 여행은 더 이상 나에게 input의 시간도, 아이들에게 pause의 시간도 못될 것임은 너무 분명했다. 가능하면 국가 간 이동을 줄이자고 마음을 먹었고, 결국 국가 간 이동은 0번으로 결론지어졌다. 한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보자고 조금 엉뚱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달살이를 시작하던 2015년도에는 한달살이가 그렇게 유행하기 전이었다.) 남편은 세 번의 한달살이 동안 항상 함께 출국을 하여, 아이들과 나의 '정착'을 도우며 10여 일의 여행 후 먼저 귀국했다.

첫 한달살이는 로마였다. 한 달을 살기에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한 달도 부족했다. 두 번째 한달살이는 프라하였다. 한 달을 사는 동안에는 특유의 무뚝뚝함에 참 정이 안 갔는데,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낯선 이에게 먼저 잘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 가족과 닮은 도시였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한달살이는 아테네였다. 시간도 미화시켜주지 못하는, 가장 실망스러웠던 한달살이였다. 그리스 신화가 곳곳에 숨어있는 이 도시는 나그네에게 참 친절하지 못했다.

아이들 공부는 수학 문제집 한 권이 전부였다. 딸 아이가 중1이 될 때도, 딸 아이가 중3이 될 때도, 하물며 딸 아이가 고1이 될 때도 우리는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들고 유럽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방학을 보내고 돌아왔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아이에게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여행을 계획할 시간에 너의 선행학습을 계획했더라면 네가 고등학생 때 좀 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수시 지원에서 '6 광탈'하고 울던 딸아이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가족들이랑 여행한 게 난 더 좋았어요. 그 시간에 내가 학원을 다녔다면, 또 모르죠, 내가 너무 일찍 지쳐버려서, 이렇게 끝까지 수능 공부를 할 힘을 잃었을지도...' 나를 그렇게 위로하던 딸아이는 다행히 정시에 합격하여 오늘 첫 대학 수업을 들으러 갔다. 또다시 그 시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난 아이들과 한달살이를 떠날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더 어릴 때 시작할지도...


* 여행을 다녀오면 책 만들기 앱을 사용하여 책을 만들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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