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새 마음의 고향이 된 스타벅스

이사를 가든 여행을 가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날 맞아줘.

by 임수정

요즘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 아니, 사실 집을 내놓고 새로 이사갈 동네를 물색하는 등 꽤 구체적으로 준비해나가고 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게 한이었던 우리 엄마는 자식들만은 꼭 서울에서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할아버지와 오랜 투쟁 끝에 서울로의 분가를 감행하셨고, 나는 30년을 서울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서울에 정착시켜 주셨는데, 내발로 서울을 떠나야 할 상황에 이르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래서일까. 첫 이사후보지로 남편이 점찍은 동네에 갔을 때 지금보다 두 배는 더 큰 널찍한 집, 아이가 뛰놀면 너무나 좋아할 것 같은 놀이터를 보아도 마음이 좀처럼 동하지 않았다. 초등학교까지는 단지에서 걸어 육교를 건너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1층이라 빛이 잘 안 드는 것 같아 보인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집을 구하며 발품도 팔아보고, 인터넷도 뒤져 보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 바로 '스세권'을 어필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 부동산 아주머니도 "여기 뒤로 조금만 걸어가면 스타벅스가 있다"고 말씀하셨고, 인터넷 아파트 후기에도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문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와, 스타벅스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대략 가고 싶은 동네가 정해져 있고, 이제 집이 나가기만 하면 본격적으로 준비가 진행될 예정에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 이 길도 과연 몇 번이나 더 걷게 될까 생각하니 잠시 마음이 울적해져 스타벅스에 들렀다. 에그샌드위치와 겨울메뉴인 토피넛 라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으니 언제나와 같은 변함없는 익숙함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내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거기 스타벅스도 이런 음악이 나오겠지. 이런 테이블이 있고, 이런 분위기 그대로겠지. 적어도 스타벅스만은 나에게 낯설지 않을거야. 이런 생각을 하니 이사생각에 심난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해외여행을 가면 지칠 때 나도 모르게 스타벅스로 발걸음이 향한다. 내 일상에서 멀리 떠나 낯선 것들을 잔뜩 보고 담은 내가 버거울 때,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의 스타벅스는 마치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 스타벅스는 이렇지, 라는 예상했던 분위기가 실제로 딱 맞아 떨어졌을 때의 안정감. 스타벅스가 이렇게 우리나라에 대중화되기 전, 대학생 때 내 친구는 유럽여행에서 맥도날드를 그렇게 찾았다고 했다. 맥도날드도 세계 어디를 가든 같은 메뉴,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그리고 화장실을 공짜로 쓸 수 있...)


이쯤 되면 왜 그렇게 스타벅스가 늘 북적이고, 스세권이란 말까지 생겨났는지 조금 알것 같기도 하다. 어쩐지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그래도 스타벅스만큼은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으로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덧없는 것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