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고싶은 아빠가 아닌, 아이가 필요로 하는 아빠 되기"
"아빠 가~~~아빠 저기 가서 코~!"
잘 준비 마치고 누워 있는 아들 옆에 남편이 다가오면 27개월 된 우리 아들은 어서 나가라며 아빠를 밀고 급기야는 큰 소리로 나가라고 외친다. 응가를 했을 때도 "아빠가 응가 빠빠이 안해~"라고 하며 남편의 손길을 완강히 거부한다. 엄마가 화장실이라도 가서 잠시 없어지면 난리가 나면서, 아빠는 없어져도 그다지 찾지 않는다. 가끔 같이 놀 땐 잘 놀기도 하지만, 이런 거부의 순간들이 매일 반복되니 남편도 서운한 티를 내곤 한다.
물론 아빠보다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다 보니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서운할 정도로 아이가 아빠를 거부한다면, 혹시 내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엄마인 내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것들이 꽤 있달까. 아이를 대하는 것이 어려운 아빠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1. 아이에게는 아빠라고 해서 좋아해줘야 할 의무가 없다.
아이가 거부할 때 "아빠한테 왜그래~아빠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이런 말 하는 아빠들이 꽤 많다. 하지만 아이는 아빠가 뭔지 잘 모른다. 생물학적 혹은 법적 아빠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저 한 집에 살고, 매일 아침에 잠깐 보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사람이다. 그저 나를 제외한 타인 중 하나일 뿐이고 꽤 자주 보이는 사람이다. 아빠냐 아니냐가 아니라, "나와 잘 맞느냐, 나를 잘 놀아주느냐, 나를 좋아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느냐"만이 아이가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을 좋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인 것이다.
어느정도 학습을 거치고 예절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라면 "아빠한테 그러면 안되지~"라는 말이 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3-4살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말 할 시간에 아이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내가 지금 하려는 말과 표현을 아이의 입장에서 들었을 때 어떤 느낌 혹은 뉘앙스일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편이 도움이 된다. "내가 상사인데~상사한테 이래도 되는건가?"라고 농담하는 상사가 있다면 나의 기분은 어떠할지를 생각해 본다면 조금 쉬울 것 같다.
2. 아이의 기질에 맞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우리 아들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느린 기질'이다. 낯선 것들을 접할 때는 매우 긴장하고, 쉽게 놀라며 위축되어 엄마에게 숨는 아이다. 이런 아이에게 갑작스럽게 다가간다거나, 소위 우악스럽게 놀아주려 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기질의 아이들은 그렇게 놀아주는 것을 좋아할 수 있지만, 느린 기질의 아이라면 좀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편이 아이의 호감을 사는 데 효과적이다.
"우와~이거 00이가 만든거야?멋지다~내가 한 번만 살짝 만져봐도 돼? 우와~~" 아이를 칭찬할 때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이에게 허락을 구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아이가 훨씬 편안하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큰 소리로, 오버스럽게, 씩씩하게만 대해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타고난 기질은 적어도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쉽게 바뀌지 않으니, 억지로 불편함에 계속해서 노출시키며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인정하며 다가가는 것이 현재도, 앞으로의 관계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3. 내가 되고 싶은 아빠가 아닌, 아이에게 필요한 아빠가 되어주고 있는가.
아들이 태어나면 함께 캐치볼을 하고, 축구를 하고, 게임을 하겠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아빠들이 많다. 하지만 아들도 아들 나름이고, 내 아들이라고 해서 나랑 같은 성향과 취미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이의 기질이 나와는 다를 때,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아빠상은 잠시 접어 두고 아이에게 필요한 아빠는 어떤 아빠인지를 생각해주는 것은 어떨까.
남편은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꿈나무인 남의 아들을 땀 흠뻑 흘리게 놀아줄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아들은 아직 어리기도 하고, 뛰면서 축구하며 놀아주는 것보다는 김장매트에 들어가 앉아 쌀을 풀어놓고 모래놀이하듯 그릇에 담는 놀이를 훨씬 더 좋아한다. 우리 아들에게 필요한 아빠는 축구해주는 아빠보다는 함께 사부작거리며 모래놀이를 해주는 아빠, 함께 그림을 그려주는 아빠인 것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노력을 지속하면서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너는 호응해주지 않냐"고 말한다면 서로에게 지치는 일이 될 뿐이다. 나는 한식을 좋아하는데, 와이프가 매일 스파게티만 해주면서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매일 요리해주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냐"고 한다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4. 어른들 사이에서만 말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00이가 장난감 뺏어서 속상했어요~"라고 말할 때 다짜고짜 "00이한테 그러면 안돼~"라는 말부터 나오는 아빠라면, 과연 아이는 아빠를 좋아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한 상사가 있어 푸념을 했는데 첫 대답이 "니가 상사한테 그러면 안되지~"라고 나오는 친구라면 계속 만나고 싶을까?
아이들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알아 듣는다. 어른들 사이에서만 말조심, 대화예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아이라 생각하지 말고 사람 대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화를 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애는 이래서~~어휴"라며 아이의 흉을 보는 것도, 더 이상 갓난아이가 아니니 아이는 다 알아듣거나 혹은 느낀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먼저 속상함을 알아준 뒤, 아이의 마음이 풀어진 뒤 살짝 해도 늦지 않다. "우리아들이 이래서 많이 속상했구나~아빠가 안아줄게"라고 먼저 말해주는 연습을 한다면, 아이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