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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태주 Apr 11. 2021

진심을 알아보는 법

'정말'이라고 말한다고 진심은 아니다


사람들이 대화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정말’이다.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게 정말이냐고 묻고, 정말 이쁘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부사로 명사로 감탄사로 다양하게 쓰인다. ‘거짓없이 말 그대로’라는 뜻인 정말을 나도 무의식 중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느 때 정말을 사용하는지 되짚어 보니,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강조하고 싶을 때였다. 믿어달라고 호소할 때 특히 나는 ‘정말’에 악센트를 넣어 말했다. “정말 진심이야. 믿어줘?”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할 때도 썼다. “정말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용서해줘.” 


그렇게 정말을 사용하면 진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오해가 이해로 바뀌기도 했다. 다행히 용서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정말이 관용어처럼 습관적으로 사용될수록 나는 나의 진심이 뭔지 모르게 되었다. 만일 '정말'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진심을 살피는데 더 집중하고, 나의 진심을 표현하는데 더 애를 썼을 것이다. 이해받고 용서받고 믿음을 얻기 전에 내 진심의 내용을 헤아리는 일, 나를 성찰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쓰고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치장과 꾸밈을 제거하면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다. 진실이 항상 아름답지 않듯이 본모습도 마찬가지다. 화장을 지운 민낯이 낯설 때가 있는 것처럼 ‘진심’이란 말도 홀로 세워놓고 보면 초라해 보인다.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혹은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가 진심인데 그 진짜 마음이 두렵기도 하고, 별 것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게 진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무수한 친절과 예의와 겸양과 존대의 말로 치장된 관계의 말들 속에서 어느 마음이 참이고 거짓인지 나 스스로도 잘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진심의 반의어는 ‘가심’인데 사람들은 이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있어도 가짜 마음은 없다고 믿는다. '가식'은 진짜 마음을 감추고 속이는데 쓴다. 마음을 너무 드러내도 안 되고 너무 안 드러내도 문제다. 그래서 점점 내 진심이 모호해진다. 그래서 인류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서 어느 게 진심이고 가식인지를 알아채는 감각을 발달시키며 진화한다. 


나는 너를 진심으로 대했는데 너는 진심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관계는 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심을 축적하고 다지는 일보다 진심이 눈에 보이도록 표현하는 일에 초점을 두게 된다. 나는 진심이 겉으로 드러난 정황, 혹은 정도를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진정성이 느껴지면 그 사람이나 그 가게나 그 물건에 호감을 가지게 되고 관계를 맺거나 애용하게 된다. 즉 진정성의 농도, 느낌의 여하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진심이 자본이다. 


진심의 핵심, 진정성의 요체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양적으로 사용하면 진정성이 된다. 곰탕집이 있다. 뼈를 전기솥에 넣고 서너 시간 고와 맛을 낸 곰탕집이 있고, 꼬박 하루를 장작불로 고와 맛을 낸 곰탕집이 있다고 하자. 이 곰국에 사용한 시간의 차이가 진정성의 차이다.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만나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가장 값진 가치를 지닌다. 오늘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은 자신의 전 재산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노인에게 청춘의 시간은 황금이다. 시간이 금값인 이유는 그것이 유한한 목숨이기 때문이다. 즉 목숨의 양이 시간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그 시간만큼 내 목숨의 일부를 내주고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잊으려 하고 있을 때, 그 때도 내 목숨을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삶이라고 할 때의 그 인생은 어느 것에 더 목숨을 소비했느냐의 결과로 증명된다. 


그래서 나는 미워하는 시간보다 사랑하는 시간을, 잊으려하는 시간보다 그리워하는 시간을 더 늘이려고 한다. 그것들을 구매하는데 내 목숨을 지불하려고 한다. 나는 자주 내 자신에게 타이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으려고 목숨을 허비하고 분산하지 마라. 공허해진다. 지나놓고 보면 남는 게 없다.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내 진심을 줘도 아깝지 않을 사람에게 목숨을 내주어라.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나에게 내주고 있는 사람들과 진실해지고 깊어지기를 원해라. 그래야 목숨이 흩어지지 않고 축적된다. 축적된 목숨의 관계들이 일생의 시간이 되고, 그것이 나의 역사가 된다. 


정말은 정말일 때만 쓸 수 있다. 정말은 진심일 때만 쓸 수 있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에게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쓸데없이 분산되는 시간을 제한하고 막아야 한다. 다른 어떤 일보다 가장 우선해서 그에게 시간을 쓰고 있다면 나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만큼 진짜가 없고, 그 시간만큼 정말인 것은 없다. 시간의 양이 사랑이다. 시간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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