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태주 Mar 02. 2021

그리움의 문장들

시인이 채집한 그리움 보고서



새 책을 냈습니다


어머니가 언젠가 그랬습니다. 아프게 하는 것보다 고프게 하는 게 더 나쁘다고. 그때는 그 말뜻을 잘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인정 고프고, 사랑 고프고, 사람 고픈 게 마음 아픈 것보다 더 참기 힘들고 오래 아프니까요.


새 책을 내서 또 누군가를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보고파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겨우내 엎드려 썼습니다. 거리두기로 몸이 멀어지니 사람이 고프고 따듯한 마음들이 고팠습니다. 그리움이 감당 못할 만큼 불어나서 그리움을 덜어내려고 그리움을 퍼내서 썼습니다.


‘채집 황홀’이란 말이 있습니다. 수렵과 채집의 원시 본능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무언가를 탐색하고 채집하는 것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돼 일시적 황홀을 맛본다는 뜻입니다. 나는 외따로이 혼자가 돼 그리움의 문장을 수집할 때 채집 황홀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달빛으로 쓰는 작가가 있고, 별빛으로 쓰는 작가가 있고, 햇빛으로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 나는 새벽안개로 썼습니다. 햇볕이 비추면 빠르게 지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워져서 원래 있던 강이며 나무며 길이 드러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문장을 꿈꾸며 썼습니다. 역시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문장들이라도 가엾게 여겨줄 당신이 있을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모았습니다.


비운으로 절판된 첫 책, 이 미친 그리움에 있던 그리움에 관한 글들도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와 나중에 온 그리움들과 혼인시켰습니다. 점점 생이 척박하고 황량해 감각의 심연에 닿는 일이 힘겨워졌습니다. 아름답게 살다가 선량하게 죽는 일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가능하고 감각되었던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다 그리움이었고, 또 그리워해야만 하는 외로운 운명이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실은 삶의 허기에 대해 썼습니다. 따뜻한 체온이 그립습니다. 읽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에디터의 정중하지 않은 충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