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일곱 시 이십오 분, 그는 테헤란로에 마련한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 출근하였다. 아니, 전혀 작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50평 사무실 공간은 다른 부띠끄 펌에 비하면 훨씬 쾌적한 편이었다. 주니어 변호사들에게 비록 방 한 칸씩을 내어주진 못했지만 뭐 어떤가, 바닥에서 굴러보는 것도 다 경험이다. 잘 사는 집에서 운 좋게 태어나 겨우 3년 로스쿨을 다니고 변호사 노릇을 한다는 저들이 너무 한심하지만, 그런 마음은 철저히 감출 수 있었다.
조갑노 대표, 조변이 서초동 근처가 아닌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은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원하던 시기에 급매가 나와서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 충동적으로 매입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잘 나가는 스타트업 자문 전문 펌으로 거듭나기 위해 서초동도, 광화문도 아닌 테헤란로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쳤다.
땅땅.
그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바로 땅. 그러니까 부동산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는 그야말로 실개천의 용이었다. 아파트 투자로 꽤 짭짤한 수익을 번 그의 올해 목표는 꼬마빌딩을 매입하는 것이었다. 강남 사무실을 담보로 잡아서 강북 저 끝 언저리에 있는 꼬마빌딩을 사야 한다는 게 맘에 걸렸지만, “건물주”라는 피 끓는 단어가 내 것이 된다니 그는 닭살이 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자마자 그는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전날 퇴근한 변호사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특히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원을 끄는 것”이었다. 공용 프린트기와 커피머신, 그가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야심 차게 도입한 계란찜기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자리의 컴퓨터 모니터도 반드시 끄고 퇴근하는 것이 그가 이끌고 있는 <법무법인 조인>의 규칙이었다. 그에게 모든 전자 기기는 필연적으로 전열 기기였고, 열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결국 계속 켜 두면 불이 날 수도 있다는 거였다. 휴, 끔찍한 상상이었다.
출근하여 어김없이 사무실을 돌아보던 그의 눈에 깜빡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박변의 자리였다. 그녀는 모니터를 끄지 않고 퇴근한 것이다. 컴퓨터 본체를 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모니터까지 반드시 꺼야 한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그는 테헤란로가 한눈에 보이는 그의 방으로 돌아와서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구성원 제위, 누누이 강조했으나 오늘도 모니터를 끄지 않고 퇴근한 구성원이 있습니다….”
톡톡.
그는 키보드를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탕비실로 향했다. 아니, 캔틴으로 향했다.
이상한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외국계 기업에서는 탕비실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뒤 그는 캔틴이라는 용어를 즐겨 쓰기 시작했다. 고객사를 방문하여 고객에게 도착을 알리면서, “캔틴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무심하게 내뱉는 문장은 그 자체로 세련미가 있었다.
냉장고에는 탄산수와 젤리, 아이스크림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와인셀러에는 4병의 와인이 언제나처럼 걸려 있었다.
“얼음 만드는 소리였나?”
그는 탄산수를 한 병 뜯을까 하다가,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나서 머그컵을 꺼내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에 올려두었다. 커피 캡슐을 낱개로 끼워두는 상자를 열어 그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셋넷…
어제 퇴근할 때는 분명히 서른두 개가 남아있었는데, 서른 개의 캡슐밖에 없었다. 그가 퇴근한 뒤로 남아서 야근을 한 건 박변과 정대리 밖에 없는데, 두 사람 모두 저녁시간에 커피를 먹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의아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커피 드세요?”
정대리가 사무실 문을 열며 인사했다.
“응응, 일찍 왔네? 어제 늦게 가지 않았나?”
“아뇨, 저도 대표님 나가고 곧바로 퇴근했어요. 박 변호사님만 남아 계셨을걸요?”
정대리는 썩 맘에 드는 직원은 아니었지만 어리숙한 맛에 데리고 있음 직했다. 최근에 사무직원에 연달아 퇴사하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조 대표는 미소를 지었다. 내일 채움 공제까지 따박따박 쌓여가고 있을 테니, 정대리는 2년은 붙잡혀있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눈치도 빠르고 시원시원해서 저렇게 사무실의 각종 사건사고의 주범이 누구인지도 정대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와 “구성원 제위..”라고 시작하는 이메일 창을 꺼버렸다. 그는 하여와 같은 자비심을 발휘하여 이번만큼은 이메일을 보내지 않기로 하였다. 커피 캡슐 두 개는 야근 값으로 쳐주기로 하였다. 그는 자신의 인내심에 뿌듯함을 느꼈다. 집도 많고 자비심도 많은 나,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