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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엄마

by 리나

이 외에도 문득문득 책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 대화할 때도 많고,

잔소리 백 번 할 이야기도 책을 보고는 한 번에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책 읽어주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저 제가 읽어주고 싶어서겠죠.

어느 날 아이들이 아주 많이 커서 더 이상 저와의 이런 시간이 필요 없어지면 너무나 섭섭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정말 바람같이 지나가니까요. 첫째가 벌써 내년에 10살이에요.

아무 생각 말고 그런 순간이 오기 전, 그저 열심히 다정히 읽어줘야겠어요.

저녁밥을 먹을 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점 잠자리 독서가 어려워졌어요.

학교 다녀와서 숙제하고 놀다 보면 어느새 10시더라고요.

10시에는 자야 하잖아요. 키 커야죠.

그러다 보니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다 못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아이들이 저녁을 먹을 때 읽어주기 시작했어요. 그게 벌써 3년 정도 되었네요.


저는 살이 굉장히 잘 찌는 체질이라 저녁을 아주 간단히 먹으니 밥을 못 먹는 건 힘들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차분히,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다는 게 좋고,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느라 밥 먹는 걸 멈춘다는 거예요.

그럴 땐 책을 단호히 딱 닫아버립니다.

그럼 화들짝 놀라며 열심히 먹습니다.

누군가는 밥 먹을 땐 밥만 먹어야 한다지만, 이미 우리에겐 너무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매일 읽어주다 보니 책을 사서 읽는 건 힘들더라고요.

아이들 책은 짧아서 하루에 적어도 2권은 읽어주게 되는데,

그걸 다 사자니 비용도 문제지만 공간이 없었어요.

전집을 빌려서 읽어주기도 했는데, 이러면 다양하게 읽어주는 게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전집은 비슷한 문체와 비슷한 감성을 가지잖아요.

이 문제는 친한 언니가 알려준 책 대여 어플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한국은 참 잘되어 있는 게 많은데, 책 대여도 이렇게 편하고 잘 되어 있더군요.


덕분에 첫째 아이에게 맞는 초등학생용 조금 두꺼운 책과 둘째에게 딱 맞는 유아용 책을 다양하게 빌릴 수 있게 되었어요. 첫째 아이를 위한 책은 나눠서 읽어주고, 둘째 아이 책은 한 번에 다 읽어줘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두 가지 책을 다 듣게 되어서 좋습니다.

둘째가 잘 따라올까 했는데 재미있게 듣는 걸 보니 다행이에요.


첫째 아이가 태어난 후 우연히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이라는 책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관성처럼, 습관처럼 읽어주고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9년이 되었네. 그렇다면 나는 9년을 매일같이 책을 읽어줬구나.

몇 천 권은 읽었겠다. 그런데 효과가 있는 건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어디선가 음독이 그렇게 좋다고 했는데, 저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매일매일 소리 내어

적어도 20분은 읽고 있잖아요.

확실히 책을 읽는 게 편해진 것 같고, 글 쓰는 건 점점 더 재미있어지네요. 하하…

아이들을 생각하면,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흔히 ‘책 좋아하는 아이’ 하면 떠오르는 어려운 책을 척척 읽고 글을 엄청 잘 쓰는 그런 아이들은 아니에요.

평범한 아이들입니다. 좀 차분하긴 한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오래 노력을 했는데 효과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약간 슬럼프가 왔습니다. 복직하고 너무 바빠져서 그랬나 봅니다.

‘내가 일도 하고 밥도 차리고 책도 읽어줘야 하나! 밥 차려주고 누워나 있을까!’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이런 생각을 하고 난 후,

함께 읽은 책 덕분에 아이들이 바뀌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첫째 아이를 위해 일부러 『만복이네 떡집』같이 학교생활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읽어주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친구들에게 점점 다정해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더라고요.

첫째 아이가 감명받은 표정을 순간순간 보았던 것 같았어요.


책 덕분일까요? 회장 선거가 있던 날 첫째의 친구 엄마한테 너무 고맙다며 연락이 왔어요.

그 친구나 제 딸이나 둘 다 부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는데, 제 딸이 그 친구에게

“속상하지? 힘내!” 하면서 자기가 아끼는 보석 반지 사탕을 줬다는 거예요.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저한테 말을 안 해줬거든요.


첫째 아이가 여자아이인데도 다 큰 남자애 같은 면모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뭐 했니? 물어보면 주로 밥이 맛있었다거나 줄넘기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것도 물어봐야 말해줘요.

규칙도 단호하게 지키고요. 유도리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 보니 친구 사이에 다정함이 약간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어요.


이 외에도 문득문득 책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 대화할 때도 많고,

잔소리 백 번 할 이야기도 책을 보고는 한 번에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책 읽어주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저 제가 읽어주고 싶어서겠죠.

어느 날 아이들이 아주 많이 커서 더 이상 저와의 이런 시간이 필요 없어지면 너무나 섭섭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정말 바람같이 지나가니까요. 첫째가 벌써 내년에 10살이에요.

아무 생각 말고 그런 순간이 오기 전, 그저 열심히 다정히 읽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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