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좋아해줘서 고마워
유독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일이 몰렸고 몸도 좋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회사에서도, 아이들 앞에서도 웃으려 애썼습니다.
퇴근길, 헐레벌떡 둘째를 픽업하고 집에 저녁을 차려둔 뒤 첫째를 데리러 갔습니다.
태권도가 끝나고 룰루랄라 신나게 나오는 첫째를 웃으며 반겨주었죠.
여기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첫째가 도시락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요.
분명 ‘과자 파티’라고 했는데, 내일 간식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과자만 몇 개 챙겨주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갑자기 당황했습니다.
첫째가 메추리알 꼬꼬닭을 만들어달라고 했거든요.
그건 5년 전, 네 살이던 아이가 소풍을 간다고 해서 처음 만들어줬던 도시락이었습니다.
당근으로 부리와 볏을, 김으로 눈을 붙여 엉성하게 만든 작은 닭.
그때는 열정이 넘치던 때라 해낼 수 있었는데, 아이는 그게 그렇게 좋았던지 아직도 종종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 챙기고, 빨리 재우고, 새벽에 출근하려면…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냥 못 한다고 하면 될 일을, 저는 괜히 화를 내버렸습니다.
“메추리알이랑 다른 간식만 챙겨줄게.”
말끝은 단호했고, 마음은 미안했습니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더 바라냐는 서운함과, 그래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뒤엉켰습니다.
저녁을 먹고 책을 읽어주면서 점점 미안한 마음이 올라오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못했어요.
그냥 다정하게 웃으며 그건 못해줘 대신 친구들이랑 나눠먹기 많이 싸줄게 하면 되는건데 말이에요.
그래서 사과를 했습니다.
화를 냈다가 사과했다가 아주 그냥 혼자 북치구 장구치구 다 하는 거 같아 웃기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잘못했는데.
잠든 아이 곁에서 뭔가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문득 도시락 꾸미기 용품이 떠올랐습니다.
워킹맘들의 구세주, 새벽배송을 믿고 찾아보니 예쁜 이쑤시개들이 잔뜩 보이더군요.
그중 마음에 드는 걸 주문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잤습니다.
“꼬꼬닭 만들어주겠다” 약속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죠.
메추리알과 포도에 앙증맞은 이쑤시개를 꽂고,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곁들여 간단하게 도시락을 꾸렸습니다.그리고 마음을 담아 작은 쪽지를 넣었습니다.
“꼬꼬닭 못 만들어줘서 미안해.
행복한 하루 보내. 사랑해.”
퇴근길,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뚜껑을 열자마자 친구들이 몰려들어 “예쁘다” 탄성을 지르더랍니다.
정작 본인은 몇 개 못 먹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며 웃었고,
쪽지에도 감동을 받은 듯, 저에게 “엄마가 너무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 주었습니다.
후… 다행이었어요.
늘 다정한 엄마이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