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리본을 단 삵을
사람들은 여전히 쳐다보았지만
삵은 거울 속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처참했다. 네모난 몸과 드러난 갈빗대, 늘어진 살가죽들. 옷을 입었을 때와는 달리 날것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는 초라하고 비참했다. 내 몸의 곡선들은 전부 직선 혹은 늘어진 선들이 되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알몸으로 서 본 적이 잘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 몸은 내 생각보다 내게 낯선 것이었다. 처참한 모습 때문인지 자신감이 없었던 마음의 문제인지 모델 면접은 2번 떨어졌다. 두 번째 떨어졌을 때 전화로 사정한 끝에서야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얻어낼 수 있었다.
첫 주는 모델 일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내 생활을 바꿨다. 아침엔 운동을 하고 저녁엔 3시간씩 같은 포즈를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20분 포즈, 10분 휴식의 코스였지만 3시간 가까이 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멍한 정신으로 지냈다.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집안일과 일정들을 소화하고 저녁엔 포즈를 하고 잠이 들었다가 또 일어나서 운동을 했다. 내가 왜 모델 일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던 시도는 어느새 내 몸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거울을 보면 처진 살이 보였고 직선적인 허리가 보였다. 살이 찌면서 남겨진 튼 살 자국들이 쇠창살처럼 나를 가뒀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생각할 수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는,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 때문에.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무식하게 부딪혔다. 운동과 연습을 하고 끊임없이 알몸의 나를 볼 줄밖에 몰랐다.
내 몸에 귀를 기울이는 건 연습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니 쉬울 줄 알았건만 눈에 보여서 더 어려웠다. 내 머릿속의 이상적인 몸을 지워내야만 실재하는 나를 보고 귀 기울일 수 있을 텐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첫 주를 힘들게 보내고 모델 일을 하는 친구를 만나 연습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보이는 포즈보다 보이지 않는 나에게 집중해야 자연스럽고 좋은 포즈가 나온다는 것. 처음에 내 몸을 나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던 마음을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둘째 주부터는 고정 포즈 연습보다는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느끼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어떨 때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니 음악을 내 몸에 채워 넣는 것 같았다. 나의 감정과 삶이 내 몸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왔다. 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몸을 샅샅이 보는 게 아니라 내 몸을 믿어주는 것이었다. 포즈를 할 때 거울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눈을 감는 일이 늘었다. 포즈가 이상할까 걱정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믿어주는 것. 바꾸거나 멀리 떨어져 있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까이 여기는 것. 사랑은 동일시이자 동시에 존중이고 발견이다. 나는 내 몸을 얼마나 나와 동일시하고 내 몸을 얼마나 존중하고 또 발견하고 있었을까. 모델 포즈 연습을 하기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꾼다는 명목 하에 우리는 우리 몸을 얼마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리고 있을까. 나를 믿어준다는 건 어떤 것일까. 믿는다는 것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대상을 그냥 믿어주는 것이다. 내 몸을 사랑하고 내 몸을 믿어주기 위한 선행조건을 너무 많이 만들어두고 있지는 않은가.
몸을 믿고 또 믿음대로 움직이는 선순환 속에서 내 몸의 장점들도 보였다. 장점이라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나는 팔이 길고 손을 잘 쓴다. 하체에 근육이 붙어 있어서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등 라인이 곧으면서도 곡선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어깨가 직선적이다. 좋아하는 부분이 늘어갈수록 내 몸이 편하게 느껴졌다. 내 몸을 볼 때 느껴지던 불편함이 많이 줄어들었다. 내 몸을 멀리 떨어져 보는 것이 아닌, 직접 움직이고 느끼며 발견한 것들이 먼저 들어왔다. 이제야 내가 발견한 나의 몸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 발견한 나의 몸이 제법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