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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Jul 07. 2022

2022.07.07 손 풀기

아주 뻔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할 거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 과 같은. 사막 한가운데에는 어이없게도 빌딩 하나가 세워져 있다. 은색으로 빛나는 직사각형의 높다란 빌딩. 밤이 되면 별을 배경으로 빌딩은 빛이 나고 있는 것이다.

72층의 빌딩. 그 꼭대기에는 네가 살고 있다. 너는 키가 무척 작았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쏟아지는 별빛이 내는 멜로디 같은, 이라고 쓰자 이 글을 전부 지우고 싶어졌다. 난 거짓말은 못 해. 빌딩과 사막, 별과 너는 전부 거짓말이야.

진실은, 쩍쩍 갈라져 버린 땅속 깊은 곳에 있다. 사막이라고 전부 모래로만 이뤄진 건 아냐. 바위로 이뤄진 사막도 있지.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 말이야. 어느 사막에는 움직이는 돌이 있다며? 돌을 타고 다니는 거북이는 이제 우리 집 어항 속에 있어.

어항은 좁지 않았다. 좁은 것은 사막이었다. 사막에서 한참을 걸어봤자 매일 같은 풍경인걸. 걷는 사람이 보인다. 쩍쩍 갈라져 버린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사람이. 거북이는 사람을 보고 걸음을 잠깐 멈추었다. 흙투성이의 사람은 거북이를 똑똑히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두려움은 없었다.

흙을 씻어낼 곳이 필요해. 그는 마음으로 말했다. 거북이는 뒤를 돌아 어디론가 향했다. 그는 거북이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몇 발자국 걷자 잘 꾸며진 물가가 나타났다. 어항은 아주 안락했다. 물가와 풀과 모래와 바위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사람은 물가에 몸을 담갔다. 앗, 차가워. 보일러는 없나요? 있을 리가. 그런대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바위에 몸을 뉘었다. 온열 등이 그의 배를 데웠다. 배가 곧 따뜻해졌다.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 것만 같아. 낮도 밤도 없는, 모래바람도 회오리도 없는 그곳.

때가 되어 음식이 들어왔다. 당근, 토마토, 풀, 사료 조금. 거북이는 기꺼이 사람과 음식을 나누었다. 입과 목구멍이 썼다. 토마토를 크게 베어 무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낮도 밤도, 모래바람과 회오리도 없는 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지냈던 것 같다.

그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영원히 서른셋. 영원이라는 단어는 무겁고도 무서운 단어였다. 거북이가 기어이 세상을 떠나도 그는 영원히 서른셋이었다. 어항과 그는 그대로 버려졌다. 밖은 추웠다. 어항 안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서린 김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쩍쩍 갈라져 버린 땅속에 두고 온 약지 손가락을 찾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줄 알았거든. 약속할 때도, 욕을 할 때도, 무언가를 가리킬 때도, 최고라고 치켜세울 때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반지를 끼울 손가락을 약지가 유일했다.

그녀가 눈앞에 있었고, 그녀는 반지를 내밀었으나 그는 여전히 어항 속이었다. 그는 어항에 두 손을 가만히 대어 보았다. 습기 위에 손바닥이 찍혔다. 습기는 점점 차올랐다. 차오르다 곧 사라지겠지. 그는 거북이의 등껍질을 생각했다. 거북이가 나와 그녀를 본다면 뭐라고 말해줄까.

그녀와 거북이와 어항과 사막과 빌딩. 난데없이 등장한 것들. 그중 가장 난데없는 것은 그의 존재였다. 어느 날 땅에서 솟은 그는 거북이의 등껍질과 약지 손가락과 토마토를 생각했다. 점점 몸이 굳어갔다. 습기는 사라졌다. 어항 안으로 똑똑 물방울이 떨어졌다. 물방울은 거꾸로 된 고드름이 되었다. 밤이 되면 별을 배경으로 빛나는. 고드름의 가장 높은 곳에는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약지 손가락을 찾지 못했다. 이제 그는 여기에도, 그곳에도 없다. 토마토의 초록색 줄기만이 이곳과 그곳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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