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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Jul 30. 2022

2022.07.30 손 풀기

들린다. 아니, 귀를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의 리듬은 그런 것이었다. 꽂히는 게 아닌, 스치는 것. 스쳐가는 궤도의 한 귀퉁이마다 잠깐 만나고 또다시 스쳐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궤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내 귀의 헤드폰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사이키델릭의 시간. 이 글을 네게 보여주는 게 맞을까?

 

의심은 그만두기로 한다. 의문 또한 그만두기로.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면 의심할 필요도,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며칠 전에는 자기 확신에 대해 실컷 떠들어대는 이를 만났다. 믿음이란 앎보다는 감각에 가깝다. 나는 의도하지 않음으로써 확신을 갖고자 했다. 


이를테면, 사이키델릭 한 기타의 선율처럼. 뭘 안다고 난 이렇게 떠들어댈까? 앎이 아니라니까. 감각이라니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의 촉감이 느껴진다. 여기는 카페. 이 자리에서 언젠가는 섹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지. 너와 내가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이야기를 말이야. 나는 감각을 활자로 풀어내는 사람인 거야. 


오만하지 않게, 그러나 확신의 감각으로. 뭉개지지 않고 날카로운 모양으로. 귀를 찌르는 리듬과 선율이 불편하지 않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아기의 높은 울음소리도, 끼익이는 문의 울부짖음도 들린다. 그 모든 게 하나의 음악 안에 모여 세계를 만들어낸다. 서로 닿는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적당한 것보다는 조금 더, 그러나 한계를 목격하지 않을 딱 그 정도의 거리. 닿고 닿아서 한계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은 절망의 순간이다. 서로에 대한 갈망이 절망을 낳는 비극의 순간. 우리는 언제나 코미디일 거야. 조금 넘치는 딱 그 정도의 거리니까. 


가라앉지 말자. 언제나 조금은 들떠 있는 채로. 혹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는 거야. 감각하는 거지. 가짜가 아닌, 이건 진짜다, 진짜. 매사에 진짜인 나는 언제나 두 발이 무거웠지만, 매사에 진심인 너는 언제나 가득 차 있어. 


너는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지. 행간에 숨어있는 리듬을 말이야. 너와 나의 선율은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같은 리듬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일지도 몰라. 만드느냐, 찾아가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야. 찾아가는 사람인 거지. 나의 리듬을 죽을 때까지 찾아가는 탐험가야. 


이제 나는 위험에 빠지고 싶지 않아. 벌거벗은 몸으로 날카로운 잎의 단면에 베어지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 나도 굳은살이 생겼어. 심지어는 옷도 입을 줄 알아. 하나씩 장비를 갖춰갈 거야. 그런데 나는 궁금해. 내가 입을 옷의 색깔들이. 


총천연색. 내 글에 자주 나오는 단어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뿜어내는 색들처럼 나를 통과한 세상이 총천연색이었으면. 무지개의 빛들이 일렁거린다. 사이키델릭 한 음악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하나의 색만 가지는 건 싫다. 나는 욕심이 많다.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너와 나는 같은 궤도를 가진다. 욕심이 많으니까. 서로를 통해 비춰본 세상 또한 갖고 싶으니까. 내 글이 언제부터 이렇게 밝고 확언적으로 변한 것일까.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 서 있는 나는 확신을 갖지 않음으로써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인데. 의도하지 않으나, 확신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것. 경계에 서 있을 순 있으나 내가 나라는 건 감각해도 되는 거잖아? 


텅 비어버린 것들에 대해 언젠가 다시 쓸 수도 있겠지. 리듬의 여백이 미치도록 외로울 수도 있을 거야. 다시 나는 귀를 스치는 음악에 빠져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의도하지도 만들어가지도 않는 사람. 언제나 지금의 감각을 찾아가려는 사람. 뜨거운 빛과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자. 프리즘을 통과하면 총천연색의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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