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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Mar 22. 2024

하루 20분, 나를 위한 침묵의 시간

나의 이야기

 어느 날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주문해 놓고 잠시 잊고 있었던 싱잉볼이었다.

싱잉볼을 꺼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3호 아들이 다가와서는 묻는다.


 "엄마 이거 무슨 밥그릇이에요?"


아담한 사이즈로 주문해서 밥그릇으로 보일 수도 있겠군.


 "아들, 이거 밥그릇 아니다. 잘 들어봐."


나는 싱잉볼을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스틱으로 가볍게 건드려보았다.

맑은 종소리가 거실에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싱잉볼(Singing  Bowl)은 티베트의 전통 악기다. 이름 그대로 '노래하는 그릇'이란 뜻인데 표면을 두드리거나 문지르면 울림이 일어나고 그 진동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맑고 청아한 소리와 편안함을 주는 울림이 있어서 싱잉볼은 명상과 치유의 목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싱잉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난달 1박 2일로 다녀온 템플스테이가 떠오른다.

최근 명상을 위해 구입한 싱잉볼(Singing Bowl)

                                       

 템플스테이를 예약해 놓고 너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체험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오롯이 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래, 나에겐 혼자만의 힐링 시간이 필요해.'


오직 이 목적 하나로 신청한 템플스테이.

나와 같은 다둥이 가족을 둔 친한 동생과 함께

이 천금 같은 기회를 함께 하기로 했다.

장소는 북한산 중턱에 위치한 중흥사.

눈 덮인 북한산을 올라야 했기에 등산화도 구입하고 스틱도 준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젠까지.


 눈에 수북이 쌓여 정말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설산을 보는 순간 흥분되기 시작했다.

뽀얀 눈을 밟으며 산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바람이 내 볼을 스치는 것도 상쾌했고 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소리도 그저 아름답게만 들렸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조금 거들뿐.

나는 그냥 이렇게 혼자 산속에 덩그러니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나 혼자!!

 

중흥사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아름다운 설경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1시간 정도 걸어올라 가면 아담한 절 중흥사가 보인다.

도착하자마자 네 명이 함께 묵는 방을 배정받았다. 나와 동생은 낯선 이들 둘과 1박 2일간 함께 스테이를 해야 한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 둘, 우리 같은 아줌마들이야 북적북적한 집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왔다지만 이 여인들은 이곳에 왜 온 걸까.


 '음... 취준생인데 취업이 잘 안 돼서 머리

 식히러?, 아니면 실연의 아픔을 달래러?

 그것도 아니면?'


누가 아줌마들 아니랄까 봐 궁금증 폭발과 오지라퍼 기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번 1박 2일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야. 나에게 집중하자.'


그렇게 맛있는 저녁공양도 마치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갖은 뒤 우리는 대웅전으로 다시 모였다.

 가장 기다리던 명상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내가 템플 스테이를 온 목적 중 하나.

명상 그까짓 거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만큼 명상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일단 집중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는다. 그런 후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을 해 볼라치면 5분도 되지 않아 온갖 잡생각이 나의 뇌를 집어삼킨다.


 '이따가 저녁은 뭘 하지... 아 맞다. 세탁기 빨래 건조기에 넣었나?... 오늘 아들 학원비 결제하는 날인데...'


아.... 이런 잡념들은 나의 신성한 명상의 시간을 자꾸 헤집고 들어와 널을 뛴다.

미쳐버리겠다, 정말.


 절에서 갖는 명상의 시간은 그래도 집중하는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용한 대웅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부좌를 하고 양손은 가부좌한 무릎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허리를 세우고 눈을 감아 본다. 스님의 목소리에만 내 모든 기운을 모아 집중해 본다.

중흥사의 새벽 명상의 시간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지려 할 때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스님이 가르쳐준 호흡법대로 호흡을 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15분이 지나고, 20분이 흘렀다.

갑자기 집 생각이 났다.


 '남편이 애들 밥은 잘 챙겨줬겠지... 3호 아들

 게임 오래 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데...

 2호 아들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했는데 너무 늦게 들어오면 안 되는데....'


아~~ 다시, 다시, 정신 집중!!!

옆길로 한 눈 팔던 나의 정신줄을 스님 목소리에 다시 집중시켜 본다.

25분, 30분이 흘렀다. 오른쪽 발가락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엄지발가락을 뒤로 꺾어 본다.  더 아프다. 쥐는 더 나기 시작했다. 이거 명상 참 어렵구먼.

그렇게 30분이 넘는 명상시간을 쥐 나는 발가락과의 싸움을 하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예불을 드리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어제와 다른 점은 바로 싱잉볼 명상이란 점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제대로 집중해 보기로 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대웅전에는 침을 꼴깍 넘기는 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용한 침묵의 공간에 맑고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번엔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싱잉볼의 소리에 나의 모든 오감을 몰두시켜 보았다.

스님이 싱잉볼을 한 번씩 칠 때마다 그 소리의 울림이 깊고 길게 퍼져나갔다.

종소리가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울림이 서서히 멀어지는 시점까지 따라가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어제보다 좀 나아진 듯하다. 호흡에 좀 더 신경을 써가며 깊은 명상에 빠져보았다.

 지금의 공간이 아닌 또 다른 공간으로 잠시 나를 옮겨놓아 본다. 머릿속을 자꾸 비우려 애쓰면서 소리에 빠져들어가다 보니 마치 내가 다른 공간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고 깨끗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 이래서 명상을 하는 거였어.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어제보다 좀 더 긴 시간 집중하고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다. 명상도 연습이 필요하다.


 템플 스테이를 다녀온 후 스님 말씀대로 매일 짧은 시간이지만 명상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아들~ 엄마가 매일 20분씩 저녁에 명상을

 할 거야. 그때 엄마를 방해하지 말고 도와줘야

 해."


3호 아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그렇게 시작한 나를 위한 침묵의 시간은 단 20분.

하루 20분만큼은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을 비워내고 나는 저 멀리로 떠날 것이다.

 종종 싱잉볼을 신기한 종소리가 나는 밥그릇 정도로 생각하고 방해하는 3호 아들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꾸준히 실천해 볼 생각이다.


 "아들들아~ 너희들도 엄마랑 같이 시작하자,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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