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는 "산티아고 말고 다른 순례길이 있는데, 아니 사실 하나도 아니고 순례길이 세계에는 정말 많은데......"로 시작하는 한편으로는 자질구레하고 약간은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고는 한다.
스페인 북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이르는 이른바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에서 꽤나 유명하다.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라는 단체까지 있고, 협회의 소개에 따르면 이미 8000명이 넘는 한국인 순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2019년에는 '스페인 하숙'이라는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한 나영석 PD의 한국인 집밥 먹이기 프로그램까지 방영되었으니, 한국인들이 순례길 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잘 알려져 있기에 한글로 된 정보를 얻기 쉽고, 매일 걷는 여행이라는 안 그래도 생소한 순례길 여정 안에서 한국인이라도 자주 만나 약간의 안정성이라도 도모하는 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존재하는 것이 여행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는 피하고 싶은 마음, 피렌체에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 "미안합니다."를 들었을 때의 김새는 마음이 누구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이왕 새로운 여행을 해보려고 한 김에 더 색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은 사람, 도착한 숙소에 처음으로 묵는 한국인이 되는 걸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경쟁을 피해 떠나온 순례길에서 숙소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자기의 속도에 맞춰 길을 시작하고 끝내고 싶은 사람, 아니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미 걸어서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
우리가 걸었던 순례길은 '비아프란치제나'로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시작해 프랑스,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지나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무리가 되는 순례길이다. 총길이는 1800km, 보통 90일 정도가 걸리는 여정이다. 알프스 산맥을 넘을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전체 여정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라면 4월~7월에 영국에서 출발하는 것을 권장한다.
비아프란치제나의 큰 매력은 순례자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로마에 가까워져 갈수록, 즉 이탈리아 지방에 들어서면 순례자가 늘어나지만 영국, 프랑스, 스위스 지방에서 우리가 만났던 다른 순례자는 단 1명뿐일 정도로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는 시기를 좀 이르게 잡았던 감도 있지만, 성수기 때도 산티아고보다는 훨씬 덜 붐빈다. 그렇기에 순례자 전용 시설도 많지 않다. 그것이 불편함이 될 수도 있지만 덕분에 무료로 재워주시는 분들이나, 식사를 무료로 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정을 주고받았달까. 프랑스의 한 마을의 바 뒷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잤던 경험이나, 여러 번의 히치하이킹, 구청 앞에 처량하게 앉아있을 때 동네 주민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우리가 잘 곳을 구해주려고 했던 경험들은 우리의 순례길을 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만들어주었다.
프랑스에 비해 스위스는 비아프란치제나 길 표시가 잘 되어있다. 스위스는 워낙 둘레길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SwitzerlandMobility 앱*을 다운로드하면 비아프란치제나 길이 잘 표시되어 있다. 자연이 유명한 스위스이니 만큼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호수를 둘러싼 기다란 포도밭, 호숫가에서 하는 캠핑, 그리고 비아프란치제나의 하이라이트인 알프스 산맥 위에서의 하룻밤을 순례길 위에서 경험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바이러스가 여행길을 막고 있어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언제든 빗장이 풀리면 배낭을 싸고 길에 오를 꿈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뿐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길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비아프란치제나를 염두에 두신 분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남겨 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걸었던 발자국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