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사실래요?
방관 사회/때로는 힘 빼고/세상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를 때/앎의 불편
by
어른이 된 피터팬
Jan 27. 2021
서적 코너를 좋아한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 코너를 담당하시는 여사님께서 나를 예뻐라 해주시는 이유도 있다.
매달 각 장르별로 베스트셀러 열 권의 리스트를 출력해 갈아 끼는 것도 나의 일.
어떤 책들이 잘 팔리는지, 이슈 상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평상시에 소설 장르는 잘 읽지 않는데 베스트셀러란에 전시된 책 표지에 이끌려 구매한 책이 있다.
<아몬드>란 책인데, 흡입력이 좋아 단숨에 읽었다.
1. 방관 사회
18쪽부터 충격을 주었다.
방관했던 폭력사건,
아무도 저지하지 않아 죽은 피해자가 자신의 아들일 줄이야.
우리는 나 살기도 바빠서,
세상이 흉흉해서,
또는 스마트 기기에 몰두하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모른 척 지나간다.
남의 일이겠거니 가십거리로 한 번 씹은 후 바로 뱉어내버린다.
함께 힘을 합쳐 더 큰 사고를 막은 시민들,
위험 무릅쓰고 생명 살린 용감한 시민.
간혹 들리는 이러한 뉴스들이 크게 칭찬받는 이유 중 하나가
남을 위해 뛰어들고 힘을 합쳐 시민의식을 발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온라인 세상에서는 남에게 "개입"하는 것이 다반사지만
진짜 세상에서는 최대한 남에게 "개입"하지 않으려는 세대
다.(또는 조심스러운)
그러나 우리는 같은 사회 속에서 다 연결되어 있다.
개개인의 인식 총합과 행동양식의 중앙값.
내가 한 행동은 결국 내가 받을 행동의 근사치다.
내가 위험에 처한 타인을 보고 도움을 줄 확률은
남이 위험에 처한 나를 도와줄 확률과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서로 돕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는 좀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돕고 있는가?
2. 때로는 힘 빼고
"어떻게 표정에 변화가 없어. 생각 안 나? 네 할머니랑 엄마 생각 안나냐고."
"생각나. 많이. 자주."
"근데 잠은 잘 와? 학교는 어떻게 다녀? 망할, 가족이 네 앞에서 피 흘리면서 죽었는데."
"그냥, 살게 돼. 나보다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도 얼마 안 돼 먹고 자고 다 할 걸.
사람은 살게 돼 있는 존재니까"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가까이서 보면 매일 생존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그냥 매일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오늘은 너무 버겁고 큰 일이지만 다 해결하고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 참 많았다.
그때는 세상이 끝날 것 같고 내 인생이 무너질 것 같았는데, 어느새 다 지나가 있다.
너무 힘들 땐 힘 빼고 그냥 살자.
전속력으로 헤엄치려 하지 말고 힘을 빼고 수면에 뜨게 내버려 두자.
흐르는 물에 흘러가다 보면 다시 헤엄칠 힘이 나고,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하니까.
세상에는 내가 낑낑댄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꽤 있다.
취업도 그렇고 직장생활도 그렇고 사람 관계도 그렇고, 내 역량 밖일 때가 있다.
원체가 매사에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으로서 힘 빼고 살아가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
가끔은 해파리처럼 해류에 몸을 맡긴 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까.
3. 세상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를 때
"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방학과 휴가철, 그리고 연말연시.
누구나 특별한 계획을 세우며 이 날의 일탈과 여유, 설렘을 기다린다.
그러나 내가 "누구나"에 속하지 않는다면,
서러움과 슬픔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계절을 나는 느낄 수 없을 때,
다른 별에 사는 이질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나에게 주말이 그랬다.
남들은 주말을 기다리며 월화수목금을 버틴다.
하지만 유통업 현장 종사자에게 주말은 가장 바쁜 요일이다.
객수와 매출이 많은 만큼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계산대에 서야 한다.
사람들의 주말과 나의 주말은 다른 계절이고 다른 온도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다른 계절을 산다는 것은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큰 정서적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차도 막히고 값도 비싸지만 남들이 여행 갈 때 다들 여행을 가나보다.
4. 앎의 불편함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 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 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가끔은 무딘 사람이고 싶다.
가끔은 눈치 없는 사람이고 싶다.
가끔은 어떤 것들을 모르는 사람이고 싶다.
상처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불편하고 싶지 않다.
한때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피터팬처럼 네버랜드에 남고 싶었다.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알아버린다는 것이었다.
져야 할 책임과 부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더 이상 미성년자로서의 혜택을,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추구했던 많은 것들이 이상적인 것이라는 것을.
세상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과정이 중요하지만 결과가 다일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자 현실이, 내 상황이 버겁게 느껴졌다.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도피할 수도 없는 노릇.
앎이 주는 불편함을 억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원치 않아도 어른이 됐고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앎이 주는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다.
현실을 제대로 알면 허상의 장막을 걷어내고 방해 요소들을 가지치기할 수 있다.
나를 객관화하면 현실적인 시각으로 더 나은 결정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이상을 바라보지만 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기 때문에,
그동안 보려 하지 않았던 현실을 오늘도 애써 직시해본다.
우리 집 경제상황이 어떠하고 부모님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
사회생활에서 순수함이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인 상황들도 알아야 한다.
정치, 권력 프레이밍과 억압적 구조를 지각하게 되면 프로 불편러가 되기도 하지만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다.
이렇게 앎이 주는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앎이 주는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자격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 많이 알고자 보고 듣고 배우려 한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하니까,
책임감을 갖고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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