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후회하고 더 만족하는

스스로를 쓰담쓰담 해주자

by 어른이 된 피터팬
"버티는 게 장땡이라는 말. 인생의 몇몇 구간은 버티는 시간이었다."
-최인아 책방 안방마님-


두루마리 화장지 맨 끝 두 칸을 남겨둔 심정이다. 새 롤로 갈아 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이나 썼구나. 너무 낭비했나 싶다. 끝에 남은 두 칸을 보니 허투루 쓴 나날들이 하나 둘 생각나 후회스럽다. 좀 더 계획적으로 살 걸, 좀 덜 게으를 걸, 좀 더 마음을 열 걸. 추운 바깥공기만큼이나 공허하게 날려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들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올해 내내 '존버 하자'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이 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


연말은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든다. 밤이 되면 하루를 반추하며 오늘 일어난 일들과 들은 말, 내뱉은 말들이 생각나듯이, 연말은 일 년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회상한다. 나는 아직 존버 중이다. 어쩌면 존버, 그것이 내가 이룬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열차가 햇볕 구간으로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초 회사에서 마음을 다친 후 마음이 닫혔다. 겨울이 오자 올 한 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내공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반성과 후회로 가득했다. 다행히도 12월에 들어서 마지막 힘을 냈고 세 가지 도전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로 돈을 벌어봤고, 데이터 분석 자격증을 따면서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겼다. 오랫동안 움츠렸던 몸을 조금씩 꼼지락 거려본다. 새로 도전할 용기가 생긴 것 같다.


그래도 21년은 다소 후회스럽다. 근데 후회 없는 삶이 좋은 것일까? 그 말은 다른 가능성을 돌아보지 않고 내 선택만 바라본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인생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때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회 없는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줄여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 22년 말에는 오늘 느끼는 것보다 적은 후회가 있기를.


그렇다고 21년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후회와 만족은 다른 감정이기 때문이다. 비교를 통해 느끼는 감정이 후회라면 만족은 비교가 아닌, 대상으로부터 직접 얻는 것. 남의 비트코인이 오르면 그걸 사지 않은 나의 선택을 후회할 수 있지만 남의 코인이 떨어져서 내가 만족스럽진 않다. 내 주식이 잘 돼야 만족할 수 있다. 한국인은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 살며 비교에 익숙하다. 남들만큼은 해야지, 그것만큼은 되지 말아야지 등. 평균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비교하며 산다. 그러나 그걸로 만족도를 올릴 순 없다.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의 삶이 나아갈 때 만족할 수 있다. 그래서 22년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더 배우고 싶은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계속 생각하면서 좀 덜 후회하고 좀 더 만족하는 한 해를 만들 것이다.


21년은 모두가 새로운 변수와 어려움을 마주했다. 존버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았고, 그 와중에 힘과 여건이 되어 전환과 발전에 성공한 사람들도 잘 살았다. 우리 모두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박수 받을만하다. 스스로를 쓰담쓰담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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