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_여러 행성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by 어른이 된 피터팬

언어 속에는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철학을 하려면 그리스인의 청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것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中


2주 전부터 영어회화 스터디를 시작했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어떤 것이든 새로 시작하고 싶었고, 재밌게 살고 싶었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시간을 더 쓰고 싶었다. 회사(일)와 나의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집중할 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 회화 스터디를 시작했다.


왜 영어 회화인가 하면, 어릴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잘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교육철학으로 친구들보다 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공부했기에 input 대비 효율적인 output을 냈다. 물론, 외국 생활은 교환학생 때가 전부이고 한국에 와서 영어를 안 쓰다 보니 영어 말하기는 변비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유럽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그때의 내 모습을 스스로가 좋아해서 영어 회화를 다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영어를 잘 못해도 영어로 말할 때의 나는, 한국말을 하는 나와는 다른 느낌이다.


유럽에서 1년간 있으며 느낀 것은 내가 아는 모습과 남이 보는 나의 모습에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향적인 편이고 위험회피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외국 친구들은 내가 super active 하고 outgoing 하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다른 자아로 살고 있었다. 영어를 할 때의 나는 좀 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 되며 좀 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 된다. 의도해서는 아니지만 스스로 느낄 정도로 다른 모습의 내가 나온다.


외국이라는 공간, 이제까지 쌓아온 나의 조각들(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새로운 나를 창조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오랜만에 영어회화 스터디에 나가 새삼 느끼는 건, 영어로 말하고자 하면 좀 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다. 말은 버벅거릴지라도 태도는 더 당당하고 자기주장력이 커진다. 그 언어를 말할 때, 그 언어 문화권의 속성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국가, 여러 인종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언어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부여한다. 언어는 전달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문화권의 속성들이 응축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언어 본인의 앵글로 세계를 보게 한다. 그래서 영어를 할 때는 평소처럼 조용히 듣고 지켜보기보다는 좀 더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문화권에 산다는 것. 그것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가 부여한 다양한 가치들에 영향을 받는 것. 그 문화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지향하게 되고, 그 기준으로 세계를 보게 하며, 본인도 모르게 그것들을 행동에 녹이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더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 좀 더 다채로운 나로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소심하다 생각하지만 외향적인 내가 좋을 때가 많다.

조용히 듣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게 다반사지만 가끔은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낭만적인 사람이 좋을 때도 있다.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것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정말이지 언어를 바꿈으로써 여행 온 기분으로 살 수 있다. 언어라는 다양한 행성을 돌아다니며 여러 세계관을 인지하고 경험하며 다양한 가치들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러한 바람은 실용성을 떠나서 나라는 사람이 좀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고 폭넓은 이해를 갖고(편견 없이)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잔 생각)

이번 주 스터디에서는 배두나, BTS RM, 김영철, Jay Park, 그리고 크리스탈의 영어 인터뷰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각 사람마다 다른 느낌의 영어를 구사하였고 외국인인 Jay Park과 크리스탈의 말하기 태도는 사람 by 사람인 요소가 있겠지만 좀 더 당당한 자세랄까.


한국 여자 배우와 미국의 여자 배우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문화적 차이가 눈에 보인다. 미국은 여성성에 당당하고 섹시하고 건강한 모습에 좀 더 가치를 둔다면 한국에서는 수줍음과 애교 같은 소위 한국식의 여성성이라고 하는 가치들에 대한 선호가 높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말하기(언어습관)에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생각해보면, 영어에는 애교와 일맥상통하는 용어가 따로 없다. 그에 비슷한 단어를 찾자면 fragile, 깨지기 쉬운이란 단어가 맞으리라.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잔 생각)

언어라는 것은 비단 영어, 한국어, 중국어처럼 국가의 속성을 기준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이과와 문과생의 언어가 다르고, 온라인/컴퓨터 언어가 다르며 각 개인의 언어가 다르다.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같은 language를 구사하지만 분명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각 개인의 세계관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러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이상하다의 관점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 놀러 왔다는 생각을 한다면 좀 더 재미있는 교류 또는 교감이 가능하다(이게 어렵지만).


결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소우주를 품고 살아가는 존재. 오늘은 어떤 행성에 놀러 가 볼까.

매거진의 이전글#할머니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