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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Apr 22. 2022

코로나 격리 7일, 나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협업관계

4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가 해제되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폐지는 미정이지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 시점,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는 재택근무의 존폐 여부와 코로나 확진자의 격리 의무 해제가 가장 큰 화두이다.

재택근무의 경우 회사 방침이 아직 내려오지 않은 상황에서 100% 사무실 복귀가 현실화될까 봐 마음을 졸이는 게 다수의 심정. 한번 도입된 제도나 문화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쉽게 없애기 어렵다는 경로의존성 때문에 회사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눈치다.

그러나 코로나 확진자의 격리 의무 해제는 정부의 지침이기에 5월 말부터 시행될 것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데 감염병 걸리는 것도 타이밍이 되어버린 상황. 걸릴 거면 지금이라도 빨리 걸리는 게 낫고, 아니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걸리지 말자고 우스갯 소리를 한다.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 동료와의 상생

불과 2주 전만 해도 나는 미확진자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걸리는 상황에서 미확진자라는 신분은 천연기념물과 같았다. 친구가 없는 사람 또는 슈퍼항체 보유자라는 두 가지 경우로 분류됐다. 끝까지 미확진자로 살아남기 위해 되도록 랜선(비대면) 모임을 주선하고 방역을 철저히 했지만 가족이 확진되자 속절없이 감염됐다. 그렇게 나 역시 확진자가 되었다.

확진이 되기 전 두 가지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는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는 코로나에 걸려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둘 다 틀렸다.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야 코로나 확진자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를 테지만 코로나는 확실히 독감과는 달랐다. 오한과 발열, 두통과 근육통, 기침으로 며칠간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나 역시도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코로나에 걸리고 7일이라는 재택 격리기간이 주어졌다. 처음 4일은 너무 아파서 핸드폰도 못 보고 누워만 있었다. 그래도 회사 업무가 계속 신경 쓰이고 걱정이 되어서 수시로 회사 노트북을 켰다. 내가 아파도 업무의 기한은 다가오기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걱정 말고 쉬라는 팀원들의  메신저를 받았다. 도울 게 있으면 알려주고 회복에 힘쓰라는 그 말이 몸이 아픈 상황에서 더 고맙게 느껴졌다.

바쁘게 몰아치는 업무에 내 일과 내 모니터만 보고 사는 일상이다. 그런데 질병으로 불가피하게 모든 것을 멈추게 되니 비로소 보였다. 동료와의 상생관계가 보였고, 팀이라는 형체가 보였다. 프리랜서처럼 각자의 일을 진행하느라 바쁜 이 팀에서 이전에는 와닿지 았던 "지원이 필요하면 도움 요청하세요"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회사는 당신이 없어도 잘 돌아간다

잡코리아가 20대~40대 직장인 304명을 대상으로 본인을 '프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조사에서 54.6%가 스스로를 프로 직장인이라고 답했다. 그중 73%가 3년 차~5년 차가 되는 시점부터 스스로를 프로 직장인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직무 이동이나 팀 이동 없이 3년 이상을 일한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내가 팀 업무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 "나 없으면 조직이 안 돌아가"라고 말이다. 경험과 숙련도가 쌓이면서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올라가는 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지만 자기 객관화도 중요하다. 당신이 정말 비범한 능력자라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다수의 범인들은 착각하고 있을 확률도 크다.

생각해보자. 흔히 기계 속 부품이 된 것 같다고 느낄 때 직장 생활에 현타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내 일이 제일 많고, 내가 제일 바쁘고, 제일 중요한 일을 한다는 느낌에 빠져 거대한 시스템 속 나의 위치를 망각하게 된다.

회사는 조직이다. 조직(organization)은 생물학 용어 organ에서 파생된 말이다. organ은 세포들이 모여 특정 기능들을 수행하는 장기를 뜻하고, 우리가 조직이라고 부르는 회사도 이와 비슷하다. 따라서 세포로 구성된 조직의 생명 유지와 활동 메커니즘을 생각하면 회사라는 조직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료와 협력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팀이라는 부속기관을 구성하고 운영한다. 순환이 잘 되어야 유기체가 건강하듯 교류와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이 건강하다. 세포 하나가 죽는 건 전체 유기체에 큰일이 아니듯 냉정하지만 회사에서 인력 하나 대체되는 것은 큰일이 아니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가 구성원으로 속해 있는 조직의 메커니즘이다.

코로나 확진과 격리로 잠시 업무에서 빠져나와 조직이 돌아가는 양상을 구조적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서로의 공백을 메우며 팀의 기능을 이상 없이 해내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 잠시 내 자리를 이탈해도 일은 진행되고 조직은 무리 없이 굴러간다. 존재론적 위기감과 부담감을 좀 내려놓아도 된다는 안도감, 양가감정이 들었다.

협력하는 조직 문화를 위해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과부하에 걸린다. 인력이 감축되었는데 조직이 별문제 없이 운영된다면 둘 중 하나, 그 일이 필수적인 일이 아니거나 빠진 인력이 수행하던 일을 누군가가 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의 회사는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대부분 일시적 인력 이탈은 동료의 업무 과중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휴가도, 병가도 단순한 쉼은 아니다. 동료에게 나의 공백을 부탁하고 내가 취하는 휴식인 것이다. 물론 노동자로서 내가 당당하게 행사하는 나의 권리이지만 이 조직의 시스템은 제로섬으로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나의 업무 축소(-)는 누군가의 업무 과중(+)이 될 수밖에 없다. 세포들 사이의 조율이 있기 때문에 조직이 평화롭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동료를 도울 수 있는 건 기회이기도 하다. 동료의 지원 요청은 나중에 나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회다.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품앗이' 문화가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에도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직에서 품앗이가 잘 이루어질까? 조직이론 분야의 대가인 체스터 버나드(Chester Barnard)는 조직 내 협업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①공동 목표 (common purpose)
②돕겠다는 의지 (willingness to contribute)
③의사소통 (communication)

다른 조직에 속했던 경험을 반추해보면 품앗이가 모든 조직에서 당연하게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업무 특성이 있기도 하지만 조직 내 경쟁이 치열하고 평소 정보의 교류가 적으면 서로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품앗이를 하기에는 교환되는 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돕겠다는 의지가 낮아지고 휴가를 갈 때도 노트북을 가지고 가 본인의 일을 해야만 한다.

개인주의가 강해 각자 알아서 일하는 조직과 협업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일하는 조직. 어떤 것이 옳다기보다는 산업과 업무 특성에 따라 적합한 방식이 있고 개인의 성향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호만 놓고 보자면 나는 후자에서 일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 요청을 하지 않고 혼자서 다 조율이 가능하다면 최상일 것이지만 많은 조직에서는 불가피하게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으로 7일간 조직과 거리두기를 하며 느낀 것은 위기감과 안도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동료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팀원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에게도 기꺼이 도움을 준다는 신뢰가 생겼다.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우하라'는 말처럼 앞으로는 동료의 도움 요청에 기꺼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본  글은 4/22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omn.kr/1ye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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