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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Oct 08. 2022

잘한다는 아니어도 자란다는 마음으로

지금 힘든 건 성장통이야,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지

팀을 옮긴 게 맞은 걸까? 그냥 있을 걸 그랬나?


문득문득 과거의 선택을 현재 시점에서 판단해본다. 과연 나는 좋은 선택을 한 것일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떤 '지금'을 살고 있을까? 이러한 IF 가정법은 후회라는 감정으로 데려가기도 하지만 초심을 짚어보고 현재의 관점을 수정하며 미래를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이 업무 담당했던 A님과 함께 얘기해보고 다음 주 다시 보고해주세요."

완전 다른 직무로 팀을 옮긴 지 반년이 넘었다. 어딘가에서 나를 찾는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고 경험주의자인 나는 새로운 팀, 새로운 기회와 배움을 택했다.


이전 직무가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나는 그 일을 사랑했다. 트렌드에 예민하고 빠르게 정보를 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활동적인 직무에서 일 자체를 즐겼다.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재밌게 덕질을 했다. 새롭고 흥미로운 상품과 테마를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내 일이 홍익인간이라는 개인적 신념과도 맞닿았다.


그리고 지금은 기획 직무에서 일한다. 경영학도가 아니고 보고서를 써본 경험도 없고, 이전 직무와의 연관성도 크지 않아 정말 생소한 직무로의 이동이었다. 이직한 느낌을 받으며 팀과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많은 업무를 쳐냈다.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는 게 직장인이고, 초반에는 기획보다는 OP 운영 업무들 위주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정말 기획 업무를 하게 되면서 고군분투 중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팀장님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옆 팀에서 다 보는 자리에서 거진 30분 동안 혼 나는(?)듯한 장면이 연출되어 힘내라는 격려의 말과 에너지 드링크를 받았다. 피드백을 받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보고서를 고쳐야 할지에 골몰했기에 창피하다는 감정은 느낄 새가 없었고 '어떻게 고칠까'와 '처음으로 팀장님을 실망시켰다는 속상함'만이 있었다. 그런데 자리에 돌아와 나를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눈빛들을 인지하며 창피함을 느꼈다. (창피함은 어쩌면 자발적 감정이 아니라 피동적 감정이 아닐까)


음료수에 붙여진 "힘내세요!"라는 옆 팀 선배의 격려 메시지와 "다음부터는 회의실 잡아서 보고 드리세요"라는 선배의 꿀팁까지. 남들의 눈에는 내가 안쓰럽게 보였나 보다. 응원과 격려 모두 너무 감사했으나 짠해 보이기는 싫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불쌍하거나 안타깝다고 느끼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나의 부족한 점(기획력, 보고 스킬)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처음 하는 일이라 잘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남들의 시선에 의해 창피함을 느꼈지만 그 감정에 속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아직 낮은 연차인 지금, 보고서를 쓰는 법과 기획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잘 익혀서 12월에는 기획도, 보고도 잘 해내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랜 시간 상세하게 피드백을 해주신 팀장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팀에 온 것에 감사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목적이 "인정을 받고 좋은 고과를 받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배우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고 일 잘하는 직원을 원하겠지만 개인적으론 배우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장점들을 하나씩 배우고 일에서도 나름의 인사이트들을 배우고 싶어 회사를 다닌다.


배우는 와중에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성과로 인정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일 뿐. 나는 배우러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혼나더라도 배울 게 있다면 회사에 다니고 싶고 일에서 실패하는 것 자체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팀에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개개인이 가진 재능과 전문성, 업무 스타일과 사회 스킬 등. 팀원 분들과 대화하면서 인사이트를 얻을 때면 짜릿하고 그들이 작성한 문서들을 볼 때면 모방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면 정말 잘 알려주신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가르쳐주고 피드백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의 업무 외적으로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 그리고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면 손 내밀어 주시는 우리 팀원들이 너무 좋고 감사하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배우고 익혀서 내 몫을 해내고 나만의 업무 스타일을 또 만들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도 사람인지라 요 몇 주간 텐션이 낮았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약간의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다. 하이 텐션을 좀 죽이고 배우는 자세로 업무에 더 집중했다. 재택근무도 자중하고 바쁜 선배의 눈치를 보며 피드백을 갈구했다. 그리고 내 일의 핵심은 보고서를 잘 쓰고 보고를 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본질에 집중해 그 목표를 잘 달성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아간다. 대상을 잘 알지 못하면서 기획을 할 수 없다. 처음 보고는 그랬기에 실패했다. 프로젝트의 대상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획을 했으니 1차원적인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그래서 더 공부하고 공부한다. 다행히 2차 보고는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차주에는 세부안까지 작성해 3차 보고를 해야 한다.


아직은 기획 업무가 어렵고 두렵고 걱정스럽지만 매일 0.1cm 자란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라서 12월이 되었을 때는 이 업무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를. 지금 이 힘든 시기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성장통이라고 믿는다.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란다는 것이 내 목표이기에, 나는 이 성장통을 즐길 수 있다. 늘 그랬듯이 어느 시점부터는 성장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업무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그 시점, 나는 나의 자람을 목격할 것이다.



* 부정적 피드백을 성장으로 연결하는 방법

: 사람인지라 부정적 평가나 피드백을 받으면 위축되고 의기소침해지기 쉽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고 부정적 감정에 빠져 나를 소모하게 되기도 한다. 충분히 더 즐겁고 잘 지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부정적 감정에 빠져 그러지 못할 때가 있었다.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이 아깝다.


회사에서의 일은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어떤 부정적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은 제쳐두고 그 일이 발생한 원인과 그것의 의미, 그리고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것들을 침착하게 정리해본다. 피드백을 받을 경우에도 모든 말을 다 받아들이고 전해지는 감정을 온전히 전이당할 필요는 없다. 거기서 내게 필요한 사실 정보들(메타인지와 업무 역량을 높이는 지식,정보들)을 추출해서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영양분을 받아들여 나의 성장에 활용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어차피 다닐 회사라면 즐겁고 재밌게 생활하는 게 좋다. 회사에서는 사람을 미워할 필요도 없고, 감정적으로 나를 소진시킬 필요도 없다.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일을 해내고 나 스스로의 성장을 추구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 나는 좋은 장점들과 재능이 이미 많은데 또 하나의 역량을 획득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자. 나는 이것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라고 나를 믿자.



요즘 기획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기획은 모든 업무에서 필요하고, 회사 밖에서도 필요하니까 이번에 제대로 배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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