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이 된 피터팬 Nov 06. 2022

섬세함, 그것은 본질을 보려는 노력

애써 희망을 말하는 것

섬세함과 예민함의 차이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섬세함은 자신보다 타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를 더 신경 쓰는 일종의 배려다. 그리고 예민함은 본인을 중심에 두고 외부 자극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촉수를 동원하는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다.


섬세함과 예민함 모두 외부로부터 많은 정보와 자극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일종의 비효율적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정신의 굳은살이 박인 것이 좋은 것일까? 굳은살이란 것은 외부 자극을 줄여주는 방패와 같아서 자아 외부에 어떤 일들이 벌어져도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는다. 굳은살이 두꺼울수록 자극이 완전히 차단되어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정신의 굳은살이 두껍게 박인 사람은 나라는 세계 안에서 편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 일견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때, 과연 사회 속 개인의 그 원대한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 이전에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사회를 본인이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 채 one of 이방인 마냥 삶을 겉핥기식으로 살아갈 뿐이지 않을까? 외면하려 해도 결국은 나 역시 이 사회와 분리할 수 없기에 이 사회 누군가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느끼는 측은지심과 동지애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기심에 의해서라도 우리는 사회의 이야기를 듣고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를 듣기에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 너무 많은 목소리들이 제각기 소리를 낸다. 무엇이 맞는지 어떤 것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피로해서 귀를 닫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사회의 퍼즐 한 조각으로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함께 본질을 보고 내가 살고 싶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양상을 보면, 국가 재난과 재앙 상황이 닥치면 흙탕물처럼 여러 책임론과 비난이 본질을 흐린다. '그곳에 간 사람이 잘못'이라는 본질을 벗어난 책임론이 나오기도 하고 '본인이 살고자 보인 민낯의 생존 욕구'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현상을 가만히 주시하여 흙탕물 속 가라앉은 본질을 봐야 한다. 잘못된 문제 규명과 책임론은 의미 없는 후속조치(월드컵 응원 등 추후의 모든 행사 금지 같은)와 대안을 마련할 뿐이며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책임 소재를 두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저 많은 혼란의 목소리와 잘못 쏘여진 비난은 사회적 자아가 참사를 받아들인 섣부른 예민함의 표출일지도 모르겠다. 사회를 향한 짜증처럼 말이다(본질 파악을 건너뛰고 비난의 대상과 책임자를 정해 불편함을 빨리 해소하려는). 그러나 우리는 예민함을 잘 관리해야 한다. 심호흡을 깊게 쉬며 흙탕물 속 침전물들이 가라앉아 상황이 깨끗하게 보일 때 우리는 섬세함의 말과 행동을 뱉어낼 수 있다.


물론 필터링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느린 사람이라 여러 번 대상과 현상을 바라보아야 겨우 이해한다. 간혹 동그란 눈을 하고 눈썹을 올린 채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수정 가능성을 열어두려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인지하고 살아내는 방법이다. 느린 사람이라서 설익은 생각을 뱉어내 떫은 표정을 하는 피해자들을 만들고 싶지 않은 나는 대체로 가만히 오래 많이 바라보는 편이다. 좀 피곤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섬세한 사람이고 싶다.


섬세함의 표현, 그것은 삐뚤어진 비난과 고통의 재생산 또는 전이가 아니라고 믿는다. 본질을 보려는 노력과 개선의 노력에 동참하는 것, 그래서 결국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이 있어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고 싶어 희망을 가지는 것이기에. 나는 퍼즐 한 조각으로서 작은 목소리로나마 애써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한다는 아니어도 자란다는 마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