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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Dec 16. 2022

어느 대기업 HRDer의 고백 (2)

[교육은 에너지의 교류]


다 큰 성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건 쉽지 않다. 학생은 배우는 게 일인 사람들이기에 수업에 집중하라고 수업 중에 딴짓을 하지 말라고 요구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일이 우선인 직장인에게 업무 연락이 와도 일하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하기란 상당히 조심스럽다. 또한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신 분들의 경우 오랜만에 장시간 앉아 수업을 듣는 게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하지만 교육 담당자는 책임자로서 모든 것을 허용할 순 없다. 강의안 외의 것들은 화면에서 꺼주세요, 메신저를 하지 말아 주세요 등.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싶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고 강사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수업에 집중하도록 매너를 요구해야 한다. 교육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하기 싫은 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서비스 업무는 에너지의 교류다. 본인의 컨디션이 안 좋다고 저기압으로 교육을 진행하면 그 기운이 그대로 교육생에게 전달된다. 그러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꺾이고 교육 만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억지로라도 텐션을 끌어올려 교육생들의 기운을 북돋우고 집중을 끌어내고 학습 분위기를 조성해야 교육 효과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수업을 시작할 때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스트레칭을 같이 하고, 교육이 끝나고서는 오늘도 열심히 산 것에 박수를 쳐준다.


물론 본인의 기준이 서있는 어른을 회유하거나 협조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교육담당자는 노력한다. 고생하는 담당자를 봐서라도 따라주시는 이해심 깊은 분들 덕분에 면학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교육 담당자는 그런 교육생 분들이 정말 감사하다. 교육은 이렇게 에너지의 교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나 역시 회사 누군가의 요청에 적극 응하자고 또 한 번 다짐한다(이런 게 pay forward인가).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이 없듯이 교육도 모든 교육생을 만족시킬 순 없다. 1:1 교육이 아닌 이상 다들 원하는 바가 조금씩이라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직무교육의 경우는 바로 실무에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스킬을 원하고 그럼에도 회사 입장에서 알려줘야 하는 큰 틀의 원론과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


게다가 큰 조직의 각 파트에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해당 교육 내용이 각자의 업무와 연관된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의 "매우 만족"을 이끌어내는 것은 무모한 바람이다. 모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의 최고점을 원하지는 않는다. 내가 담당하는 이 교육에서 모든 교육생들이 귀한 시간을 내서 참여하는 만큼 도움 되는 무언가를 하나씩은 다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강의 내용이든 유관부서 담당자의 이름이든, 회사에 대한 로열티든 일에 대한 재미든, 개인의 성장이든.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내가 바이어를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홍익인간의 정신 때문이었다. 이 좋은 걸 나만 알고 있을 순 없다, 여러 사람에게 이 맛있는 걸 알리고 싶다. 좋은 걸 보면 나눠주고 그들이 좋아하는 걸 보는 게 기뻤다. 그리고 이 홍익인간 정신은 교육에서도 발현된다. 바이어를 할 때는 좋은 상품을 발굴해 알려주는 것이 기쁨이었다면 교육은 좋은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좋은'을 정의해보면, 유익한, 필요한, 만족할만한 이라 할 수 있고 좋은 교육 콘텐츠는 상품개발처럼 개발과정을 거친다. 타깃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들에게 좋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인터뷰하고 공감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객 분석). 방향성을 잡고 콘텐츠를 구성한 후에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제한된 자원(사람, 비용, 시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판매 전략). 생각해보면 교육 기획은 바이어 업무와 닮았다.


무엇보다도,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많이 들어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좋다, 유익하다가 내 기준에서만 좋고 이로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어를 할 때 나만 좋아하는, 내 주관만 고려한 상품은 시장에 나와도 외면받는다. 의도는 선했으나 홍익인간의 뜻을 펼치지 못한다. 너무 독특한 취향과 시야를 가진 바이어는 대중 시장에서 먹히기 어렵듯이(매니악한 분야로 갈수록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히트 치기 어렵다) 너무 내 기준에서만 좋다를 해석한 것은 아닌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제공자의 입장에서 중요하고 이롭다고 생각하는 교육 내용이 회사가 요하는 방향성이 아니거나 현업의 니즈와 맞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바쁜 직장인의 시간을 뺏을 뿐이다. 그래서 회사의 방향을 공부하고 여러 현업 부서와 교육 대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자기 주관보다는 회사와 대상자의 기준에서 이롭다는 것, 중요한 것, 좋은 것을 찾아 연구하고 기획해야 하는 것이다. 많이 경청해야 홍익인간이 가능하다. 계속 듣고 공부해야 한다.


[ '배우는 게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


호감이란 그 대상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알아갈수록, 들인 시간이 많아질수록 호감이 짙어진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지는 않지 않은가. 내가 아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깊어지는 것이다.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도 그렇다. 잘 몰랐을 때는 그냥 할 뿐이지만 알아갈수록, 나와 잘 맞는 부분을 발견할수록, 재미를 느낄수록, 내 일이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 기쁨을 줄수록 내 일을 더 좋아하게 된다.


처음으로 내가 기획한 교육을 하고, 오프닝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고 누군가에게 고생한다.고맙다는 얘기를 들으며 내 일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내 일을 좋아하면서 재밌어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서 일하고 싶다(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감내해야 한다, 예를 들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법정 필수교육을 100% 이수시켜야 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운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일하고 싶다. 일을 해서 일만 남는다면 오래 하지 못할 것이다. 배운다는 느낌, 알아간다는 느낌이 자기만족에 큰 영향을 미친다(그래서 교육생들이 그런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게 돕고 싶다. 물론 모두가 배움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존중한다). 아직은 다 처음 하는 일이라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가는 중인데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을 배우고 싶다. 실상은 운영 업무가 많아서 배울 수 있는 시간보다는 실행해야 하는 시간이 압도적이고, 개인 시간을 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더 많이, 다양하게 알아가고 싶다.


물론 매일 모든 순간이 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배운다는 만족감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재미를 꾸준히 일정하게 느끼며 살아가려 한다. 일을 해서 일만 남는 건 아무래도 지속되기 어렵다. 배움과 재미, 감사함을 계속 점검하며 내 일에 대한 만족도를 관리해나가야지.


이상, 아직 1년이 안된 어느 대기업 HRDer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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