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이 된 피터팬 Dec 14. 2022

어느 대기업 HRDer의 고백 (1)

[ 분업 사회, 생략된 노동들 ]


우리가 방송으로 접하는 50분짜리 영상은 수십 시간을 촬영한 후 장면을 엄선해 편집하고 어울리는 자막을 넣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노력과 시간은 생략되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50분을 느낄 뿐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벤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참여하는 강연, 교육, 컨벤션 등은 그것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모든 작업이 생략된 채 결과물로서만 대면한다. 그러다 보니 잠깐 들리는 입장, 잠시 참석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평가하게 되고 그 행사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있어 본인의 책임이 없다고 느낀다. 나 역시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조직의 많은 일들을 대했었다.


그러나 지원 부서에서 일을 해보니 간단해 보이는 일들조차 많은 시간과 노력이 응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의 회의가 있으면 그 장소를 선정하고 세팅하고 식순을 마련하고 매끄럽게 운영하기 위해(회의 이후에는 대관료 및 부대비용 정산까지) 담당자는 몇 번을 뛰어다닌다.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은 사실 간단하지 않다.


교육을 하나 운영하는 데에도 커리큘럼을 짜고 강사를 섭외하고 강의안을 만들고 교육실을 잡고, 간식과 책상을 세팅하고 평가문항을 취합하고 온라인 테스트로 만들고 결과지를 만들고... 교육을 듣는 입장이었을 때에는 교육 시간에 몸만 참석하면 되었기에 이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았고 나의 귀찮음과 현업과 동시에 교육을 듣는 수고로움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겪어봐야 알게 된다고 교육을 하나 기획, 운영해보니 모든 것이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분업 사회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생략된 과정들에 대해 생각하면 사소함은 있을 수가 없다. 심지어 내가 오늘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수시로 이곳을 청소해주시는 분들의 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깨끗한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새벽에 쓰레기를 치워주시는 미화원이 있었기 때문임을, 평소 준비 과정이 생략된 채 대면했던 일상의 것들이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무엇하나 가볍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으로 오늘의 무탈한 일상을 살고 있다. 더 자주 숨겨진 노동들을 발견하고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다녀야겠다.


[ 바쁨 속에 묻힌 Why를 꺼내라 ]


동기부여는 대개 Why에서 나온다. 본인이 목표하는 바가 있거나, 그 행동을 하는 목적이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었을 때 사람은 동기 부여가 되고 그 일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교육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what을 주입하기 이전에 왜(why) 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대상자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나는 매입 인력에 대한 필수 직무교육을 맡았다. 단순히 필수 교육이라서 들어야 한다는 이유는 교육의 당위성일 뿐 왜 이 교육을 들어야 하는지 why가 빠져있다. 그래서 교육 첫날 오프닝 때 이 교육이 왜 생겼으며 여러분이 여기서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교육은 여러분을 귀찮게 하려는 것도, 커리어에 제약을 두려고 허들을 만든 것도 아님을 주지 시켰다.


나도 매입 부서에 있을 때 교육을 경험했기에 교육생의 심정을 이해한다. 업무를 챙기면서 교육까지 듣고 평가까지 봐야 한다니 교육은 참 귀찮은 일이다. 바쁜 현업에 의해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기란 사실 어렵고 필수과정이니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교육은 교육생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실제로 준비가 안됐는데 큰 매출을 책임지는 바이어가 되자 적응이 어려워 다른 직무로 발령 신청을 한 케이스도 직접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교육의 필요성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교육생들이 바이어가 되었을 때 느낄 부담과 두려움을 줄이고 바로 실전 player로서 상품을 기획, 운영할 수 있도록 역량을 쌓을 수 있게 돕는 것이 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그걸 위해 교육을 기획했다.


그래서 나는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심으로 말했다. 여러분이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나 역시 두 팔 걷고 돕겠다고. 이 교육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있는 거라고. 그러니 이 교육을, 나를 적극 활용하라고 말이다. 교육생 분들이 교육을 잘 활용해 정말 본인의 성장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토로합니다. 바로, 도제식으로 인한 gap을 줄이는 게 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공통적이고 필수적인 지식과 스킬들을 제공해 각자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일종의 tool을 제공해드린 거죠."


"많은 매입 동기와 선후배님들로부터 듣고 저도 경험해서 알고 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일해 답답하다, 시스템만 돌리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도움이 되는 강의들로만 준비했지만 여러 업태와 CAT가 모여 있기 때문에 내 업무와 100% 연결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유통과 매입의 필수 지식과 스킬을 배우며 '뭔가 알고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매 교육마다 하나씩만이라도 얻어가신다면, 담당자가 누군지라도 알아가신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성장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여러분이 그런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렇다. 교육은 대상자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필요한 걸 취하자!


[ 지원부서란 무엇인가 ]


회사의 많은 지원 부서가 임직원을 돕기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요청하고 제약하는 귀찮은 존재, 심지어는 내부의 적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예를 들어 품질관리팀의 경우 품질 이슈로 인한 경영 리스크를 예방하고자 내부의 많은 유관 부서들에게 이것저것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승인을 거절하는 등의 업무를 한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본인의 일을 할 뿐인데 간혹 미움을 사기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편, 당연히 지원하는 게 담당 업무인데 고압적인 태도로 선심에 의해 도와준다는 태도를 보이는 분이 계신 것도 안타깝다.)


교육팀의 경우, 과제를 제출하라거나 평가에서 낙제했을 경우 미움을 사기도 한다. 대개는 일하기도 바쁜데 과제를 내는 것에 대한 불만과 평가에 낙제했을 때 평가의 난이도나 유익성에 대한 불만들이다. 그래서 단순히 들으세요, 하세요 할 것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이유, 평가를 보는 이유를 항상 교육생과 공감해야 한다. 과제를 이렇게 선정한 이유는 어떤 스킬을 함양하기 위함이고, 평가기준도 타당한 근기로 마련되었음을 명시해야 한다. 또한 평가의 목적도 떨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려 귀찮음의 화살이 교육팀을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원 부서는 말 그대로 지원하는 조직이다. 어떤 것을 어떻게 지원할지 대상자의 needs와 wants를 면밀히 파악해 효율적,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획을 대상자와 처음부터 공감을 잘해나가야지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지원 부서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조직의 존재가 특정 대상을 돕기 위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상자와 협업해 성과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과정에서, 마무리하기까지 계속 존재의 이유를 상기하며 목적과 방향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 미움받는 지원부서라면 일을 더 잘하려 하기보다 공유와 공감을 더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 MBTI가 있다?리더가 구성원을 이해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