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리더 하기 참 어려운 세상
얼마 전 대졸 신입사원 연수가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본인의 MBTI를 소개한다. MBTI에 과몰입하며 빠르게 상대의 성향과 선호를 파악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방식이다.
물론 MBTI가 완벽한 툴(tool)은 아니다. 회사에서 검사했는지 집에서 했는지, 지금 내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가 발현되고 현실에선 MBTI 검사 문항처럼 몇 개의 통제 상황과 선택이 나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MBTI가 경향성을 내포한다는 데에는 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유행한 지 좀 되었지만 아직도 소개팅이나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MBTI를 물어보며 서로의 경향성을 파악하고, 회사 사람들끼리도 각자의 MBTI를 공유하는 것이겠지.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던 팀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는 순기능 사례들도 심심찮게 들었다.
부하 직원에 맞춰서 다른 리더십을
실제 많은 기업들이 MBTI, Enneagram, DISC처럼 성격유형 및 업무 스타일을 진단하는 검사 툴(tool)을 활용한다.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사람을 하나의 유형으로 평면화할 때 발생하는 오류는 있지만 진단된 유형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스킬을 활용해 경영 효율과 효과성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검사의 핵심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마다 고유의 성향과 잘 맞는 업무/소통/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1인 기업이 아니고서야 회사란 조직은 필연적으로 다양성을 수반한다.
조직 내외부로 다양성이 커지는 시대에 다양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창조와 혁신의 시너지가 되기도 한다. 다양성을 다루는 차원인 조직문화와 리더십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상황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 model)은 조직의 다양성을 다루는 유용한 이론이다. 한 마디로,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리더십 스타일이란 없으며 부하 직원에 맞춰서 다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 리더, 섬기는 리더 등 시류에 따라 각광받은 리더십 스타일이 있었지만 모두에게 통하는 리더십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카리스마 리더와 궁합이 좋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구성원에 따라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란 말의 기준은 구성원의 성향이 아닌 '각각의 업무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나 의욕이 있고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같은 사람이라도 맡고 있는 업무 별로 의욕과 능력치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같은 사람이 다소 상이한 행동과 심리 상태를 보여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팀원의 사기저하를 막고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과제 별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도 판단할 수 있다.
아래는 업무 별로 나타날 수 있는 네 가지 발달단계와 그에 맞는 리더십 유형이다.(위키백과 참고)
*과업에 따른 4가지 발달 단계와 그에 적합한 리더십 (Development Level=발달 단계)
D1 : 높은 의욕, 낮은 능력 → 구체적인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리더십(Directing)
D2 : 낮은 의욕, 낮은 능력 → 지원과 칭찬을 통한 코칭 리더십(Coaching)
D3 : 일정하지 않은 의욕, 높은 능력 → 의사결정에 관한 책임을 나누고 새로운 목표 제시와 격려 통해 동기부여하는 지원형(Supporting) 리더십
D4 : 높은 의지, 높은 능력 → 신뢰와 인정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부하직원에게 위임(Delegating)하는 리더십
고년차라고 다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황 리더십 모델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이점이 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사람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긴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상황 리더십 모형은 구성원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본인을 이해하게 된 많은 이들이 MBTI 과몰입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4년 차에 직무를 바꿔 모든 업무가 새로웠을 당시에 상황 리더십을 통해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모든 업무에 의욕은 높았지만 이해도나 능력은 낮았을 때, 총 4개의 큰 업무를 맡았다. 구체적인 매뉴얼이 있었던 업무나 단순 운영 업무는 자신 있게 잘 해결했으나 그 외의 업무는 아는 부분이 없어 어려웠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특히 첫 보고 이후에는 일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4년 차라는 무게와 새로운 직무의 간극에서 괴로워할 때, 상황 리더십 모델을 알게 되었고 나 자체가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처음 하는 기획 업무에 한해 어려움을 겪는 것임을 이해했다. 그리고 리더에게 구체적 지시를 요청해 신속히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초반에 열정 가득했던 많은 직장인들이 자괴감을 느끼다가 결국 사기가 꺾이는 데에는 아마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리더십이 부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업무에 따라 다른 성숙도와 심리 상태가 있을 수 있다는 분리적 인식이 개인을 좀 더 세심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에도 폐쇄적이지 않게 만든다. 연차가 높아도 처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못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가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면 그 조직은 성장 DNA가 자랄 수 있다. 그래서 조직 문화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전엔 세상이 참 단순했다. 보편적 권리, 보편적 가치처럼 보편성에 대한 신화가 먹힌 것도 사회가 지금보단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양하고 세심하게 세상을 구분해 바라본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경영 자본으로서 리더십이 보다 정교하게 관리된다.
단순히 성과만 잘 내면 되었던 결과 중심의 리더십 평가에서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 되었다. 소통 방식, 업무 툴 활용법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리더에게 요구되고 다면평가 등 구성원의 공감까지 확보해야 한다. 이제는 구성원 하나하나를 파악해 각각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요청까지 받는다. 리더가 느끼는 의무와 책임이 더 무거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마음, 응원하는 마음이 동시에
2030 주니어 사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건 그들이 팀장에게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요구한다는 것. 과거 부모 세대는 팀장, 상사의 스타일에 본인을 맞췄다면 요즘 주니어 사원들은 리더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스마트 툴에 대한 적절한 활용, 수평적이고 효과적인 소통방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가감 없이 상사 평가에 반영한다. 리더들이 본인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데에는 그러한 자질을 갖출 것과 그 역할들을 수행할 것이 요구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지금은 자연스러워 느끼기 어렵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제 양상을 보이는 아동 또는 구성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일반적이었지 부모나 상사에게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진 않았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많은 솔루션의 대부분이 부모의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 아이의 문제 행동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구성원의 일탈 또는 조직의 저성과는 리더십이 문제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요즘 다양한 육아 프로그램을 보며 '아무나 부모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느끼는 것처럼 요즘같이 여러 자질과 능력이 요구되는 조직 세계에서 '아무나 리더 하는 게 아니다'라고 느낀다. 물론 연차가 쌓여서 승진 시스템에 의해 리더의 자리에 앉을 순 있겠지만, 구성원이 인정해야 진정한 리더가 되고 리더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환경이기에 리더의 가치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많은 책과 영상이 리더십을 말하고 미디어와 회사에서도 리더십을 남발하지만 정교해져 가는 세상에서 리더십은 더 희소해진다. 참을 수 없는 리더의 무게에 스스로 리더십을 내려놓는 자들도 보인다.
'포기하면 마음 편해'라며 리더의 자리에 앉아만 있는 사람은 그 좌절이 이해가 가서 안타깝고, 리더의 자리에서 리더가 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그 무게를 이해하기에 안타깝고 응원하게 된다.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 그것은 직장인이 누릴 수 있는 매우 큰 축복임을 연차가 쌓이며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