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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피터팬
Nov 22. 2023
다양성 담론(2)_더 나은 사회란 무엇인가
'신경다양성'으로 본 정상 범주의 확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유추할 수 있다. 그만큼 언어는 인지체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단어의 유통에는 권력이 개입하고 신조어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집단은 언어의 확산 범위 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용어가 생겨나 유통되는 현상은 단어의 출처 집단이 가진 힘을 방증한다. 신경다양성은 심리학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용어다. 이제까지 정상 범주에서 소외되던 소수자들이 스스로의 권리 확장을 위해 움직이면서 만들어진 용어가 신경다양성이다.
이러한 신경다양성 운동의 핵심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 난독증 등의 신경발달장애를 개인의 결함 또는 부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신경인지적 다양성의 하나로 간주, 모두를 정상성의 범주에 넣어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Medical model의 입장이다. Medical model에서는 장애를 개인의 결함, 부족으로 보기 때문에 장애인을 정상성의 범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치료와 중재에 적극 투자한다. 그러한 정상화 과정에서 장애인의 징후들은 억압되고 개인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레이블링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우려와 비판이 따른다. 따라서 신경다양성 운동은 지금까지의 차별을 만든 프레임인 Medical mode이 아니라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닌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Social model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이러한 두 개의 model 중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모델로의 접근을 시도해야 할까? 더 나은 사회란 누구의 입장에서 더 좋은 것일까? 대개 사회적 선택은 권력을 포함한 자원 배분의 문제다. 한정된 사회 자원이 누구에게 더 돌아가는지, 상대적으로 누구의 사회적 효용이 줄어드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선택이 생계와 생존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정상성의 범주가 확대되어야 사회 안전망이 커진다고 생각하기에 Social Model 접근이 더 이상적인 방향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회를 구성하는 수천만 개의 다양성을 다 개개로 접근해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차별되는 구성원의 비율은 점차 줄여가는 것이 모두에게 안전하고 소위 "더 나은 사회"가 아닐까.
신경다양성 운동의 모든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을 "정상"의 범주에 넣는 전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장애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장애와 비장애(예비장애)를 구분해 장애인에 대해서는 적절한 치료와 연구, 서비스 지원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어차피 모든 사람은 노화를 피할 수 없기에 종국에는 스스로 자립하기 어렵고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애는 인정하되 장애가 문제되지 않는 사회, 이상적이지만 급진적이지 않고, 구성원의 태도와 인식의 점진적 변화로 종국에는 더 나은 사회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모두 정상 범주 안에 넣자는 생각은 가족의 정의가 확대된 것과 비슷하다. 전통적으로 정상가족은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4인 가족을 가정했다. 이혼가정과 조손가정 등 이전에는 가족 해체의 결과로 사회문제로 여겨졌던 가족의 형태가 점차 늘어나자 가족 해체가 지칭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이 커졌다. 가족형태가 다양해지자 "가족"의 정의가 확대된 것이다.
일례로, 스위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쓸 때, 과거에는 “친애하는 학부모님께”로 작성했다면 지금은 “친애하는 학부모님과 법적 보호자님께”라고 가족의 범위를 확장해서 정의한다. 이처럼 다름을 인정하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는 것에 방점을 놓고 인정한다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는 적절한 지원이 갈 것이고 사회 조직 단위도 효율적으로 운영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