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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Jan 31. 2021

#잘못된 범생이

타의 모범은 개나 줘 버려!

나는 모태 모범생이었다. 신생아 때부터 잘 자고 잘  먹고 잘 울지 않았으며(?)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도 쭉- 범생이였다. 항상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가장 잘 듣는 학생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 내게, 어른이 하지 말라는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었고, 하라는 것들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디서든 모범을 보이는 나는 어딜 가나 칭찬을 받았고 어디서든 "땡땡이처럼 행동해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나는 모범생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모범생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버렸던 나의 기회비용들. 지금은 그 기회비용들이 내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임을 알기에 나는 지금부터라도 환골탈"범생이"가 되려 한다. 그렇게 나는 모범생이 싫은 어른이 됐다(엄밀히 말하면 모범생 프레임과 모범생을 양산하는 교육 시스템이 싫다).


가끔 동창들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참 재미없게 살았다고. 물론 범생이들 나름의 소소한 재미와 일탈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노잼이었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정답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생각과 질문을 할 것이고, 가끔은 교칙을 어기고 친구들과 잊을 수 없는 추억들도 만들 것이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며, 치마 줄이기나 화장, 야자(야간 자율학습) 빼먹기 등 흔히 어른들 기준에 아이들에게 나쁘다는 것들도 시도해보며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제한했던 많은 것들이 나쁜 게 아니다. 단지 어른들이 통제하기 수월한 것이었고 획일화된 교육에 적합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모범생으로 길러진 아이들은 대부분 획일적인 모습의 어른이 되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우리 대다수는 개개인의 잠재성으로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각 시대가 원하는 틀에 맞춰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과거 산업이 발전하는 시기에는 체제에 순응하는 어른을 양산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은 다양성이 중시되고 혁신이 필요한 시대다. 따라서 요즘 핫한 오리 집게처럼, 비슷한 어른을 양산하는 모범생 프레임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모범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애초에 모범생이라는 프레임이 사라져야 한다. 모범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권력이 부여된 것으로, 이러한 개념이 있으면 그 권력을 취하기 위해 학생들은 본인의 사고와 행동을 검열하고 스스로를 구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모범생을 설정해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주입식 수업과 암기식 시험으로 사고력을 제한하는 것.

이와 관련해 인상 깊었던 책 구절이 있다.

"교육은 무지를 강요하는 제도이다. 체제에 순응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순응에 따른 혜택을 누리기 시작한다. 또 믿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버렸고, 세뇌와 왜곡과 거짓말로 얼룩진 체제에 길들여진다. 따라서 당신은 특권층에 동의하는 일원이 되고, 그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지배당하고 교화당한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中-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모범생에서 벗어나야 하고, 정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까지 천재성을 가진 아이들과 잠재력이 큰 아이들이 사회에서 정한 정답에서 벗어났다고 문제아이가 되고, 그 문제아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려진 기회비용들이 얼마나 큰가. 또한 모범생이란 프레임으로 개인의 행복과 개성을 희생시킨 불행한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앞서 모범생들이 갔던 길들을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획일적 교육으로 나에 대한 탐구나 다양한 경험 시도가 부족했던 원인도 있을 것.) 그러니,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시행되어, 좀 더 행복하고 나다운 어른이 가득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요즘은 내가 교육현장에 있지 않아 얼마큼 변화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방향성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소견).



+ 잔 생각)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평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언급한 책이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12년 동안 우리는 정답이 존재하는 객관식, 오지선다 유형의 시험에 익숙해진다. 누구의 시선에서 정답인 것인지, 어떤 의미에서 정답인 것인지 의심치 않고 우리는 정답을 암기하고, 정답을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식 시험 시스템은 12년간 우리의 사고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하나의 정답을 찾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세상에 사실 정답이라 할만한,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이런 평가 시스템에 길들여진 어른들이 사회에 나와, 여러 개의 답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의 답(대개는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라는 태도로 대화한다면, 소통이란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오늘날 평가 시스템은 많은 부분 서술식으로 바뀌고 있다.


서술형 시험은 쓰는 사람도 손이 아프고 채점하는 사람도 번거롭지만 사유하는 힘을 기르고 여러 답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시킨다. 서술형 시험에 익숙한, 또는 개방적인 사고 범위를 가진 어른들이 서로의 답을 교환하고 발전시키는, 이렇게 시간이 걸리고 귀찮은 과정을 통해 best답을 만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가끔 유머 짤로 아이들의 오답이 떠돈다. 빨간색 작대기가 그어진 그 문제의 답에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오답이라 불리는 그 답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답이라는 수긍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출처:class_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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