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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Jan 27. 2021

#늦은 처음

처음이면 안 되는 나이

스물 후반.

여자로서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취업을 했다.

여자 동기의 대부분은 스물넷, 스물다섯.

"나이"가 그 사람의 일머리나 능숙함, 처세술을 그대로 반영하진 않지만

우리는 대개 나이가 많을수록 더 높은 수준을 기대한다.

그런 기대 속에서 (업계 기준)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높은 기대감에서 출발해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뜩이나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야 하는 유통업이다.

"체계가 어딨어.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직접 해보면서 알아가야지."

직장인도 처음이고, 유통업도 처음이지만

처음인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나이.

그 괴리에 빠져 자주 괴로워했다.


그동안 나는 나이만 먹었지 무엇을 해온 것일까.

교환학생도 가고 인턴도 짧게 두 번이나 했지만 실무 경험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책임이 주어지는 직무를 사실상 처음 맡고,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람 없이 현장에 내던져져,

계속 질문을 하며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실수를 했다.

잘 못하고 있는 나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학생 때는 공부가 좋았다.

교재가 있고, 성실하게 공부하면 성적이 잘 나왔다.

그런데 직장은 다르다.

교재가 있지 않을뿐더러, 성실하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생티를 벗지 못한, 나이 많은 새내기 직장인은

자괴감에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 경험은 별로 없지만 끈기와 성실함이 있다는 것.

실수한 것은 실수 노트에 적어 복기하고,

혼나면 잠깐 주눅 들지만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밝은 모습으로 상사에게 다가가고,

최대한 빨리 업무를 배우고자 보고 들은 것은 다 적고 이를 토대로 셀프 매뉴얼을 만들어 공부했다.

두 달 반이 지난 시점, 나의 끈기와 성실함은 답해주었다.

곧 점포를 떠나 본사로 갈 사람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만

이제는 나에게 우호적인 마음을 보이는 이들,

어느 정도 실수는 하지만 조금은 더 마음 놓고 일을 맡기는 상사,

그리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하는 나 자신.


누구에게나 처음은 힘들다.

지금은 능숙하게 일을 해내는 내 상사도 처음에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시점이 특정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처음에 느꼈던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는 의미이고,

그때와는 다른 존재로 발전(혹은 퇴보)한다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유통업 종사자로서 좀 더 이야기를 풀자면,

대개 신입들은 1년 정도 점포를 경험하고 본사로 간다.

이곳저곳 방황하느라 좀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처음 겪는 점포라는 직장에서

누구도 주입하지 않은 “다나까”를 습관화하고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발휘했다.


눈치 보느라 바쁘고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이어지는 마감 조 일상과 주말출근으로 남들과는 다른 시간 흐름을 살았다.

그렇게 몇 개월, 힘쓰는 일과 오래 서 있는 일에 익숙해지자,

같이 일하는 팀원분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고,

함께 일하는 여사님들의 마음을 얻어 업무 협조를 이끌어내기가 수월해졌다.

(초반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엄마뻘 여사님들께 업무 요청드리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죄송합니다", "앞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회초년생.

이 쭈구리 시절을 언젠가는 추억할 날이 올 거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버텼다.

그리고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미숙했지만 매일 힘내서 다시 일어나야만 했고 배워야만 했던 그때가 종종 그립다.


+ [잔 생각]

예전에는 비교적 사람들의 삶의 속도가 비슷했다.

초중고- 대학 또는 취업 -그리고 결혼

그러나 요즘은 너무나도 다양한 삶이 있다.

갭이어, 교환학생, 휴학, 아르바이트 등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각자가 가지는 처음의 시기가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생각이나 행동이) 어른이 되는 시점도 예전보다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옳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우리 모두가 처음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다른 이의 "처음"을 조금 더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미래의 나에게 하는 말.

             

내 마음의 스승, 신영복선생님의 아카이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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