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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Mar 27. 2021

#돈과 부자

Money, 널 좋아해

1월 27일에 브런치를 시작했고, 나흘 만에 갑자기 조회수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갑자기 늘어난 조회수에 놀랐고, 관종이 되기에는 새가슴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글은 주식 글이었다. 주식초보자의 에피소드와 노동가치 대비 자산가치의 상승이 터무니없이 벌어지는 상항에서 느낀 허무감을 끄적였을 뿐인데 주식 붐의 영향을 받아 유입이 컸던 모양이다. 카카오 페이지에 내 글이 노출되면서 받게 된 많은 관심은 좋음과 나쁨 모두를 포함했다. 또, 나의 생각과 느낌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극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함으로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나는 당황과 놀람, 그리고 19만 명이 넘는 조회수를 얻었다. 바야흐로 주식의 붐이고 부동산의 붐이다. 자본주의 시대를 확인시켜 주는 요즘이다. 어디서나 재테크를 이야기하고 돈을 말한다. 원하지 않아도 돈을 알아야 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주변에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 했던 재테크 방법을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본주의 시대라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방식과 과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며 비정상적이라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지.



한때 유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사농공상 사상을 나도 모르게 내재화하고 있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돈을 좋아하는 것을 세속적이라고 생각했다. 돈보다는 정의와 사랑, 공적 가치들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꿈을 키웠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주의 세계.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니,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며, 가족이나 국가에 의존하며 살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돈은 회피할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하고, 항심을 위해 항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만 돈만을 위해서 사는 삶을 경계하고 제1의 가치가 아닌 살아가는 수단으로써 돈을 좋아해야겠다고.


그래서 나는 돈을 좋아하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다. 기본적인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활동들을 영위하며,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가치에 돈을 쓰고 싶다. 작년에 적은 수준이지만 돈을 벌어보니 회사를 꾸역꾸역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이 회사가 정말 아니라면 하고 싶은 공부나 공공분야로의 이직도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 주어졌다. 아직 내 집 마련은 못한 상황이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린이 복지나 환경 캠페인에 정기후원을 하게 되었다. 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수단으로써 돈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buy)를 항상 고민한다(What to buy는 생각하지 않아도 무한 생산됨). 공짜 점심이 없듯이, 우리는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노트북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집을 살 수 있을까. 예산이 한정된 월급쟁이로서 무언가를 사기 위해 지출 계획을 세우고, 커피 한 잔을 아끼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닌다. 그렇게 무언가를 소비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대개는 제약이겠지) 결국엔 How to live와 직결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글자 그대로 How to buy와 How to live의 두가지 방법론을 내포한 인간 근원적 질문이리라.


얼마 전에는 영화 인 타임(In time)을 보면서 돈과 부자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내용은 이러하다. 시간이 화폐로 거래되는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시간을 받고,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손목에 남은 시간이 표시되고 매초가 흐를수록 목숨이 줄어들며 0시간이 되면 죽게 된다.

여기서 주인공의 엄마가 죽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다.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은 15분, 그러나 버스비(시간)를 낼 시간은 없고 집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다. 남은 시간이 떨어지기 전, 집에 돌아가 아들에게 시간을 빌려야 살 수 있다. 그리고 아들은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시간을 빌려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엄마가 뛰어오는 그 길로 전력 질주한다. 만약 엄마의 시간이 떨어지기 전에 둘이 만나지 못하면 엄마의 심장이 멎는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엄마에게 시간을 넘기지 못해 그녀는 그렇게 사망한다. 시간이 곧 돈인 사회,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하루를 생존의 위협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해하게 된 장면이었다.

 

부자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윤곽이 그려졌다. 어떤 우연한 계기로 주인공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억만장자(시간이 돈이기에 부자는 영원히 살 수 있음)에게 그의 모든 시간을 기증받는다. (그 부자는 몇 백 살을 살다 보니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모든 시간을 주인공에 넘기며 자살함.) 항상 시간이 없어 무언가에 쫓기듯 뛰어다녔던 주인공은 부자동네에 입성하여 이질감을 느낀다. 한 고급 식당에서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하자, 한 종업원이 "이 동네에는 처음이시죠?"라고 물으며, "여기 사람들은 걸음이 느리고 항상 여유롭게 식사하고 여유롭게 행동한다"라고 조언을 해준다. 그제야 주인공은 부자들의 행동양식이 보인다. 시간 많은 부자들은 전혀 자신의 시계를 보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평생 살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계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계속 자신의 시계를 확인했던 주인공과는 다른 모습이다.


영화의 결말은 잘못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로 비판적이고 통쾌하며 만족스러웠다. 또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돈은 무엇인가, 부자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요약하자면, 부자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돈 걱정으로 행동에 제약받지 않는 사람. 인 타임의 주인공도 시간이 많아지자 시계를 보지 않게 되고, 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가난하고 각박해지면 경쟁해야 하고 타인을 생각하거나 배려할 여유가 없어진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생존을 위한 시스템이 만든 행동 유인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더 부자가 되고 싶어 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죽을 때까지 품고 살아야 할 의문에 있어서,

How to buy를 고민할 필요 없이, How to live를 집중적으로 고민하며 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추구할 수 있게. 그리고 나 이외의 대상에도 관심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왓챠에서 봄.(2011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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