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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Jan 31. 2021

#월요병과 당근

채찍 말고 당근, 나를 회사로 출근시키는 법

사번이 0이나 9로 시작하는 선배님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떻게 한 직장을 그렇게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당장 다음 주 출근하는 것도 이렇게 힘겨운데, 이 월요병을 몇 번이나 극복하셨다는 거잖아!

사람이 나이가 들면 특정 호르몬이 막 활성화되는 것처럼, 어느 시점이 되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호르몬이 생성되는 것일까. 돌아보면 나도 벌써 연차가 쌓였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면 너무 먼 미래다. 그래서 연차가 15년이 넘는 프로 직장러들을 보면, 그가 감내한 월요병과 스트레스(와 빠져 버린 모발들), 내쉬었던 한숨들, 썼다 찢었던 사직서의 무게만큼 존경심이 생긴다.


5년 차 선배에게 물었다.

Q: "선배는 어떻게 한 회사를 5년이나 다녀요? 저는 벌써 재미가 시들해진 것 같아요."

A: "회사에서 재미를 찾으면 안 되지. 그리고 차 사거나 집 사서 빚이 생기면 오~래 다닐 수 있어."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웠던 물질의 상태와 분자운동이 기억나는가. 기체 상태에서 분자는 서로 인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아 자유롭게 운동하며 넣은 공간을 차지한다. 그러다 열 에너지가 방출되어 액체 상태가 되면, 분자들은 서로 어느 정도의 인력이 작용해 일정한 부피 내에서만 운동한다.

어쩌면 우리 직장인은 자연법칙에 따라 기체 상태의 분자였다가, 연차가 쌓이고 버닝 아웃되면서 열(정) 에너지가 방출되어 액체 또는 고체 분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거기다 빚이나 가족이 생겨 인력 작용이 커지면 회사에 발을 묶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기체 상태의, 아직은 자유롭게 훨훨 놀러 다니고 싶은 분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주말이 끝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기체 분자다. 따라서 나라는 분자를 월요일에 다시 회사로 출근시키기 위해서는 끌어당기는 힘이 필요하다. 맛있는 "당근"을 내게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했을 때부터 나는 나에게 당근을 요구했다. 내게 행복감을 주는 당근, 평일 업무 스트레스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당근. 최대한 다양한 당근을 시도해보며 가장 맛있는 당근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나의 당근은 테니스, 베이킹, 뮤지컬. 꽤 비싼 당근이라 매일 주지는 못하지만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당근을 주고 있다. 테니스는 코로나로 인해 아직 실험 단계고 베이킹 클래스와 뮤지컬은 유인 효과가 확실하다.


지난 해만 뮤지컬로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it's worth it! 뮤지컬을 보며 정말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뮤지컬에 입문하게 된 것은 벤허, 아이다와 같은 화려한 무대 연출과 클래식한 서사, 웅장한 분위기와 음악이었지만 빨래나 렌트처럼 창작 뮤지컬이나 현대극도 즐기게 되었다. 작년 가장 즐겁게 봤던 작품은 <킹키부츠>, 제일 의미 있었던 뮤지컬은 <모차르트>다.


Sein heisst Werden, Leben heisst Lernen
존재한다는 것은 되어가는 것, 산다는 것은 배워가는 것
Wenn du das Gold von den Sternen suchst
네가 별들의 황금을 찾으려거든
musst du allein hinaus in die Gefahr
홀로 위험 속으로 향해야 한단다.                              


-내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넘버 <황금별>中-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에도 그 불씨가 튄다. 뮤지컬을 계속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모차르트>는 내게 뜨거운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배우들의 그 에너지가 그랬고,

모차르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이 그랬으며 콜로래도 대주교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의지가 그랬다.

저렇게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함께 끓어오른다.


"나는 장조 나는 단조 나는 화음 나는 멜로디
나의 리듬 음악 속에
나는 박자 나는 쉼표 나는 하모니"


모차르트는 음악이 되었다. 나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을까. 발산하다가 수렴되지 못하고 공중분해되었던 나의 생각들. 좀처럼 성장하지 않는 나 자신에 스스로 답답함을 느껴왔는데 모차르트를 보면서 그동안 "존재하는 것"에만 집중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되어가는 것"도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당시 내가 처했던 상황에 필요했던 에너지와 교훈을 주었기에  <모차르트>는 나의 2020년 최고의 당근이다.



뮤지컬과 함께 내게 출근의 힘을 제공한 취미생활은 베이킹이다. 처음에는 프립이라는 소모임 어플을 통해 다쿠아즈 클래스, 마카롱 클래스를 신청해 들었고, 점점 배우고 싶은 메뉴들이 많아지면서 100만 원이 넘는 베이킹 클래스 정규 회원권을 구입했다. 직접 빵을 만들면서 반죽의 촉감과 발효의 매력에 빠졌고 직접 만든 빵을 함께 나누면서 그 기쁨이 더 커졌다.


하면 할수록 Cooking, baking은 참 생산적이고 인간지향적인 활동인 것 같다. 오늘날은 분업이 기본 시스템이고 근로의 가치가 낮아지다 보니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와 일의 결과물이 분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놀랍도록 당연하게 노동소외가 만연하다(어쩌면 노동소외가 직장인의 권태를 촉진하는 것일 수도). 그래서일까. 계량부터 반죽, 굽기, 포장, 그리고 나눔까지 최종 결과물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이 직관적인 활동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된다.


이렇게 당근을 물어버렸으니,

나는 월요일에 나를 회사로 출근시켜야겠다.


-주말 곧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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