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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Feb 04. 2024

유머는 삶에 도움이 된다

말을 잘 못해도 진행을 잘했다는 평을 들었다

신입사원들의 프로젝트 발표를 진행하는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당신은 어떻게 식의 순서를 구성할 것이고,

어떤 분위기로 쇼를 진행할 것인가?

참고로, 심사위원은 상무님과 팀장님들이다.


처음에는 아나운서처럼 멋있고 전문적인 모습으로 진행을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간은 신입사원들을 위한 자리다. 열심히 발표를 준비한 신입사원 분들이 본인들의 아이디어를 멋지게 공개하고 서로 열심히 한 것들을 격려하고 축하하고 즐기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는 진지해야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박수치고 즐기는 모습이 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간 나는 '싱어게인'의 이승기님을 떠올렸다. 싱어게인이 실력자 가수들이 본인의 노래를 맘껏 펼치고, 심사위원들이 고자세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정말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 좋으면 애정을 듬뿍 표현하고, 심지어는 참가자에게 멋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리고 MC인 이승기님은 참가자와 심사위원의 사이에서 적정 수준의 유머 섞인 심사평을 브릿지로 가져간다. 그래, 오늘 나의 롤모델은 이승기님이다! (프로그램 시작 전, 싱어게인이 떠올라 스스로는 이승기님에 빙의 시도)



오프닝부터 너무 무겁게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4주간 고생한 나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큰 박수를 치고 시작하겠습니다, 박수" 라고 하려다가,

"4주간 고생한 나 자신과 동료, 아 여러분, 고생은 제가했죠. 여러분은 열심히 참여한 나 자신과 동료를 위해 박수치고 시작하겠습니다"로 가볍게 웃고 시작했다.



맨 첫 팀의 발표가 끝나고 심사위원 분들의 질문이 없을 때 1차 당황을 했다. 시나리오에 없던 상황이다. 이렇게 바로 끝나면 안되는데...

" A팀은 주제를 굉장히 많이 바꿨던 것으로 압니다. 어제 새로운 주제로 다시 프로젝트 준비하시길래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발표자 00님께서 '포기란 배추를 샐 때나 쓰는거죠'라고 말하시더라고요. 오늘 발표를 보니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질문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라고 멘트를 날렸다.


이렇게 한번 입을 풀었더니 다음부터는 수월했다. 미리 생각해둔 대본도 없고 그냥 이렇게 라이브로, 애드리브로 가야지! 이미 이들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 그들을 관찰하며 쌓인 데이터를 활용, 발표를 보면서 느낀 점을 이승기님처럼 말해야겠다!


다음 팀 발표가 끝났을 때는 수월했다. "오우 이 팀은 굉장히 효율적으로 작업을 해서 과제를 빨리 끝내셨더라고요. 발표자께서 어제 아침 9시부터 끝날 때까지 발표 준비만 하시던데, 아마 스크립트를 30번은 암기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본인의 발표 점수 100점 만점에 몇 점 주시겠습니까?"


나의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다들 빵 터졌다. 그리고 발표자가 "80점이요"라고 대답하자 심사위원 중 한 분께선

"저는 90점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셔서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윤종신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 000님께선 90점을 주셨습니다."


모든 팀의 발표 뒤에는 이런 간단한 이승기님 스타일의 심사평을 브릿지로 심사위원의 피드백을 요청드렸다. 그리고 모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심사를 해주셨다. 물론 신입사원 분들이  열심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잘 발표해준 덕분이지만 내가 컨셉을 싱어게인으로 잡고 이러한 분위기를 유도했기에 더 웃으면서 즐기는 시간이  것이 아닐까.


그리고 결과발표의 시간. 다들 떠들다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개그 욕심이 났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 외쳤다.

"3,2,1. 대국민 투표를 마치겠습니다!"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교육담당자가 이런 컨셉으로 진행할지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제 손 안에는 지금 치열한 접점 끝에 선정된 1,2위 팀이 있는데요, 굉장히 은 점수 차이가 난 만큼 오늘 나온 모든 아이디어들이 좋았고 멋진 발표였다는 점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2위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드럼소리를 신입사원 분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냄)

"2위는요!.... 5분 후에 발표하겠습니다"

(야유와 웃음)

"워워~네 알겠습니다.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2위는요... 00팀입니다. 축하합니다"



웃음, 박수와 함께 1,2위 발표가 끝이 났다.

내가 정성스럽게 고르고 주문한 상품들을 심사위원께서 전달하는 시간.

상무님께서 "저한테는 뭐 안주나요? 심사위원한테도 뭐가 준비되어 있나요?"


2차 당황.

이런 질문을 하실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입이 풀린 나는 바로 답했다.

"아, 심사위원을 위해 따로 준비한 건 없습니다.

(지금 복기하며 아쉬웠던 답변, 차라리 '오 당연히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할 걸 그랬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우수한 인재들을 획득하셨습니다. 00명의 인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제일 큰 자산이니 인사 상무님은 가장 큰 것을 얻으셨다. 그리고 그에 맞는 센스있는 답변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내 답변에 만족ㅎ


그리하여 웃음 속에서 모든 발표와 시상이 끝났다.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 본인들이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맘껏 펼쳐놓은 시간,  엄숙한 평가의 장이 아닌 즐기는 장이 되었다는 게 너무 뿌듯하다.


교육담당자의 역할 중 하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오늘 사회를 잘 봤다는 상사의 피드백을 받았. 나만의 컨셉으로 적절한 진행을 통해 프로그램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그것이 통했던 시간이었다. 모두가 만족해하며 즐겁게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이렇게 1cm 또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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