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가 고마워하게 될

by 어른이 된 피터팬

새벽 5시. 눈이 떠졌다. 동이 트기 직전 바깥 풍경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갔다.
내가 아는 제주가 맞나 할 정도로 바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제주의 새벽.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그 분위기가 있다.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6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6시 반에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역시나 보리빵과 계란.
제주에 있을 때 많이 먹어야지.

일찍 일어났더니 오전 시간이 매우 많이 주어졌다. 오늘 계획은 방콕이다.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집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한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닭이 우는소리도 들리고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 다른 개가 화답하는 소리도 들린다. 멀리 한라산의 능선이 보인다. 공기 원근법이 생각난다.
꼭대기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다. 또 다른 방향의 창을 바라본다. 원형 탈모처럼 나무가 비어있는 언덕이 보인다. 원래는 농장이 있었는데 제주 목축업이 죽으면서 그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또 다른 방향의 창을 바라본다. 저 멀리 하늘 같은 바다가 보이고 그 하늘바다에 어선들이 떠 있다.
이렇게 창밖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좋은 소식.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잃어버린 나의 노란 공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ㅠㅠ 3주간 찾았던 내 독서 공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거나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어놓은 공책인데 3주 전부터 찾았으나 못 찾았던 나에게는 정말 애틋한 잃어버린 아이였다. 제주에 오기 전에 온 집을 뒤집어가며 찾았으나 못 찾고 혹시 인턴 당시 내가 쓰던 책상 옆에 두고 온 것은 아닌지 후임 인턴에게 찾아봐달라고 부탁도 했었다. 잃어버린 것 같았지만 꼭 찾을 거라고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했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니 학교 도서관에 전화했었다. 2월 19일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책을 반납하면서 그 책에 껴둔 것 같다고 시간이 좀 흘렀지만 한 번 찾아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정말 친절하신 중앙도서관 담당자님. 며칠 후 이렇게 전화를 주셨다.
노란 노트를 찾긴 찾았는데 이게 맞는지 확인차 첫 장에 뭐가 쓰여있는지 열어봐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당연하죠! (열어보신 후) 여기에 이렇게 쓰여있네요
(그분과 동시에 나도 외쳤다) "소유냐 삶이냐!"
네 맞아요! 제 노트가 맞아요!!(환희)

정말 미친 듯이 기뻤다. 그동안 내가 주워 담은 보물 같은 말들을 되찾았다! 2월 19일 이후 아무도 < 코스모스> 책을 빌려 가지 않았음에, 담당자분께서 직접 코스모스 책을 펴서 내 공책을 찾아주셨음에 감사하다.
서울로 돌아가면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찾아와야지! 보물을 되찾은 기분이다. 히히.

그리고 오늘, 인턴 했던 곳의 강 과장님께서 카톡을 주셨다. 이전에 내가 구매했던 청소기 어댑터 영수증이 필요하시다고 하시면서 안부를 물으셨다. 이렇게라도 다시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내 후임 인턴이 잘하고 있겠지만 강 과장님께선 내 빈자리가 크다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할 뿐이다. 나중에 맛있는 거 들고 찾아가 인사드려야지.

오늘의 마지막 event는 입학안내서에 교환학생 관련 칼럼이 실리는데 거기에 내 인터뷰 내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1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글로벌 교류 프로그램 관련 인터뷰에 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전화였다. 인턴을 하는 중이라 바빴지만 학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많은 것을 얻었기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그분께서 편집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칼럼 pdf 파일을 보내주셨다.
칼럼으로 편집된 것을 보니 신기하고 유럽 생활이 상기되었다. 귀찮았지만 감사의 마음으로 응했던 것이 더 큰 선물로 돌아왔다. 이렇게 오늘도 더 큰 감사를 느낀다.


keyword
이전 08화#일요일 밤이 싫지 않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