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기로 했다
하늘이 예쁜 날이다. 제주에서 날씨가 좋은 적은 많았지만 하늘이 예뻤던 때는 적었다.
회색 하늘이거나 흰 구름이 보이지 않거나. 그런데 오늘은 창으로 살짝 보이는 하늘이 사랑스럽다.
덕분에 아침 에너지가 솟는다. 없던 계획이 생겼다. 버스 타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나자!
독일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무작정 버스표를 사서 낯선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냥 낯선 공기를 마시고 낯선 곳의 사진을 찍는 게 좋았다. 가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낯선 사람들과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떠나는 나 홀로 여행. 제주도는 지하철도 없고 버스 배차간격도 길다. 서울과는 다른 이런 점이 길을 떠나기 전 여행에 대한 설렘을 증폭시킨다.
버스정거장 표를 봤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정거장, 동. 문. 시. 장. 너로 정했다!
동문시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동문시장 맛집, 동문시장 카페를 검색해봤다. 어디를 가볼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사 올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도착!
설레는 마음으로 동문시장에 도착! 이전에 여러 번 와본 곳이지만 혼자, 그것도 버스 타고 온 것은 처음이다.
제주 동문시장 1,2,3 gate와 수산시장. 이 루트로 세 바퀴를 돌았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경하고 동문시장의 유명한 음식들을 시도해보았다. 버스에서 검색하면서 봤던 대게 그라탕도 사 먹었다.
누가 봐도 나 홀로 관광객. 이것저것 사진 찍고, 혼자 먹거리도 사 먹고. 친구랑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이렇게 가끔은 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오늘은 중국 관광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오늘부터 한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이 한적한 관광지를, 나로서는 사드 보복이 가져온 장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단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가치는 우리 정부의 외교력에 크게 의존하는데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 정부와 이 현실이 안타깝다.
시장을 다 둘러보고 먹거리들도 샀으니 잠시 쉬어가기.
오늘의 책 장소로 향했다.
버스에서 검색했던 분위기 좋은 카페. Cafe Bridge16 (제주시 관덕로 15길 2층)
많이 알려지지 않은 카페라고 해서 더 끌렸다. 사람이 많으면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불편하기 때문.
동문시장 로터리 정거장 바로 뒤에 위치해있어 찾기도 쉬웠다. 처음 갔을 때 문이 닫혀있어서 다른 곳을 갈까 했지만 곧바로 주인분께서 잠시 뭘 좀 사러 나가셨는데 곧 들어오신다고 회신 주셨다. 나는 급할 게 없는 사람, 이왕 검색한 곳이니 오늘은 여기 가봐야지.
2층이라 창문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좋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민트와 초록이 포인트 색인가? 인테리어 문외한이지만 개인적 취향은 단일 색으로 통일한 획일적인 분위기의 카페보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카페를 더 선호한다.
좋은 카페에서 좋은 책 읽기! 오늘 공책에 담은 구절들 몇 개를 적어본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관의 양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에는 주관은 객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객관은 주관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이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전체와 튼튼히 연대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서로 어떠한 '관계'를 뜨개질해왔던가?
숱한 사연과 곡절로 점철된 내밀한 인생을 모른 채, 단 하나의 상처에만 렌즈를 고정하여 줄곧 局部만을 확대하는 春畵的 발상이 魚眼처럼 우리를 왜곡하지만 수많은 逢別을 담담히 겪어오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묵직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견실함을 신뢰하며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감을 감사하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노자의 일절...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어느 개인이 자기의 언어를 얻고, 자기의 作風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방황과 표류의 역정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방황 그 자체가 이것을 성취시켜 주는 것이 아니며 방황의 길이가 성취의 높이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어딘가의 '땅'에 자신을 세우고 뿌리내림으로써 비로소 이룩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이성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성에 의해 감정을 억제하도록 하는 이를테면 이성이라는 포승으로 감정을 묶어버리려는 시도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것은 대립물로서 이성을 대립적인 것으로 잘못 파악함으로써 야기된 오류입니다. 감정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해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해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섯 시 즈음인가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동문시장을 다시 돌아다녔다. 들어가기 전 쇼핑하기!
다이소에서 휴지통 두 개를 샀지만 동문시장 내에서 같은 가격에 더 예쁜 휴지통을 찾았다.
다이소에 돌아가 환불하고 동문시장에서 예쁜 휴지통을 샀다. 거대 자본이 운영하는 곳에서보다 시장 상인에게 물건을 구매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오늘 충분히 먹었으니 그만 먹어야지 했으나 동문시장 유명 먹거리인 문어빵을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것 같아 하나 사 먹었다. 맛은 있으나 내 돈 2000원 주고 또 사 먹진 않을 것 같다.
벌써 어둑어둑. 7시가 넘었다. 아까 내렸던 정거장에서 아까 탔던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기다리는 15분 동안 오늘 하루를 정리해본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 홀로 여행. 내게 여행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낯선 곳을 가보거나 새로운 것을 체험하거나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오늘 저녁에 엄마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 우리 집으로 오신다고 들었다. 육지에 있을 땐 아빠의 동창들을 만났었다. 이제는 엄마의 고향에서 엄마의 동창을 만난다. 딸이 그냥 들어갈 순 없지!
광어, 우럭, 참돔으로 회를 포장했고 기네스 맥주 네 캔을 샀다.
집에 도착하자 8시였다. 6시부터 와 계셨다는 엄마 친구분으로부터 엄마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할 말 다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는지 친구분이 본 엄마는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특이하고 인상 깊은 아이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던 할아버지보다 더 극성이고 열혈 아버지였다.
이번에 엄마께서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 갔다가 우연히 이 동창 분을 만났는데, 이분은 엄마랑 함께 했던 시간들이 본인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아직도 그 집을 찾아가 보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엄마랑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다시 행복해졌다고 하셨다.
엄마는 대학생 때가 가장 암울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오늘 친구분을 통해 들은 엄마는 매우 활동적이고 밝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엄마는 가장 우울했다고 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부러운 사람이었다. 엄마도 오랜만에 젊은 시절 추억을 공유한 사람을 만나 젊은 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무척 즐거우셨나 보다.
본인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나 보다.
아니, 만약 엄마께서 그 힘들었던 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더 나은 현재를 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여전히 고통이고 아픔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엄마를 보니 현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그리고 엄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늘 말씀하신다.)그리고 가장 힘들었을 때도 좌절하고 은둔하지 않고 많은 활동들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다른 돌파구를 찾았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통해 엄마가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긍정적인 것은 엄마에게서부터 물려받은 것이구나.
12시가 넘어 나는 먼저 잠이 들었다. 7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신 것을 보면 정말 즐거우셨나 보다.
나도 즐거웠다. 몰랐던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들. 생각해보면 엄마도 나처럼 10대와 20대를 보낸 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현실의 문제들에 괴로워하고 미래를 고민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러한 시간들을 다 보내셨을 것이고 내가 느끼고 있는 많은 감정들도 다 느끼셨겠지. 그리고 지금도 느끼시겠지.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인데 평소에는 "엄마"라는 무거운 타이틀에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요구해왔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지워내자 고유의 이름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 아빠라는 타이틀에 의해
사회가 만든 전형적인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개인을 덜어낸다.
그렇게 한 사람의 고유성은 상실된다. 엄마, 아빠. 그 자체가 그 사람을 표현할 순 없다.
엄마, 아빠.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될 순 없다.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고유성을 해방시키자.
+ 잔 생각)
미국에선 언니, 오빠라는 말 대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회사에서도 과장님, 대리님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성 또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많은 관계가 이름이 아닌 직책, 상하관계를 명시하는 호칭으로 불린다. 그 속에서 언니답게, 오빠답게, 동생답게,,,,, "누구답게"라는 행동이 필요 이상으로 요구된다.
우리 스스로가 그 틀 안에서 힘들어하면서도 그 틀을 유지하려고 한다. "00 답게 행동하라"라는 사회적 억압은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사고까지 제약하고 심하게는 사회를 획일적으로 만든다. 개인이 고유성을 유지하고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고 더 풍성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로 살아가야지.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