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은 다음에 가면 되고 월요일에도 여유를 즐기면 되고
일요일의 게으름.
뇌는 깨어서 무료함을 느끼지만 격렬하게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 눈만 뻐꿈뻐꿈.
등은 침대에 붙어버렸다. 프라이팬에 바짝 눌어붙은 계란 프라이처럼 뒤집개로 몇 번 들썩이다가 겨우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차린다. 어김없이 보리빵이다. 매일 먹어도 또 먹고 싶은 보리빵.
늦게 일어난 덕분에 퉁퉁 부었다. 7시 이후에 일어나면 얼굴이 심술 난 것처럼 부어버린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숙명인가...(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공부지만 얼굴의 부기(浮氣) 때문에 5시 30분에 기상했다.)
뒹굴뒹굴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집 청소를 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가끔 스스로가 한량 같다고 느껴지면서 불편함을 느낀다. 쉴 때는 맘껏 쉬라 하였는데 아직은 이게 어렵다. 계속 집에만 있기는 싫어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는 매월 2랑 7이 들어가는 날짜에 오일장이 선다.
오늘은 12일이니 오일장이 서는 날. 오일장에 가야지. 버스 탈까 택시 탈까 고민하다가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한 번 걸어가 보니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집에서 남산까지 걸어가 산책하고는 했으니까.) 계속 걸었다. 어제 걸었던 그 길인데 오늘 보니 새롭다. 특히, 오늘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말 두 마리가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길가에 세워진 택시를 궁금한 듯 서성이는 두 마리 말이 너무 귀여웠다.
너희는 어디서 온 거니?? 히히.
노형 오거리에 도착했다. 30분도 안 걸었는데 벌써 지쳤다. 택시를 타고 오일장이 서는 장소로 갈까 하다가
배가 고파서 그냥 근처에서 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이왕 먹는 거 회가 맛있는 곳으로 가자!
점심시간이 지난 3시 즈음이었는데도 가게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다.
오늘은 줄돔과 다른 생선(이름이 기억나지 않음) 두 종류밖에 없다고 했다. 줄돔은 한 마리에 14만 원.
가격에 놀랐지만 이왕 왔으니 맛있는 회를 먹자!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니 오일장에 갈 생각이 사라졌다. 원래 오늘 나온 목적은 오일장이었는데 배가 부르니 사람 마음이 금세 바뀌는구나. 하하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오늘 외출의 목적은 맛집 탐방으로 변경되었다. 아무렴 어떠랴. 오일장은 다음에 가면 되지.
집에 돌아와서 보안키를 찾는데.... 어....??....!! 집 안에 두고 왔다!!!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나갈 때 보안을 위해 "경계"를 설정하고 간다. 보안키로 해제를 해야만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카드를 두고 온 것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했다. 보안회사에 전화했어야 했는데 한 번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해제하지도 않고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면서 "침입"이라는 글자가 번쩍번쩍했다. 2차 당황.
보안회사 직원이 출동했다. 그리고는 침착한 표정으로 무슨 일인지 물으셨다. 제주도에 도난 사고나 침입 자체가 적어 보안회사가 보상해주는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우리 사례 역시 실수일 거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그렇게 조용히 일단락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들어왔다. 다소 민폐가 되었지만 오늘도 추억이 될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일요일이 이렇게 끝나간다. 여기에서 내게는 주말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생활과 토요일, 일요일의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요일 밤이 싫지 않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