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했는데 교환이 되었다

넉넉한 마음은 돌고 돈다

by 어른이 된 피터팬


제주도에 온 지 딱 일주일 되는 날이다.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도 못하겠지만 서울에서만큼 빠르게 가지는 않는다. 딱 일주일만큼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어김없이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날씨가 화창하다. 먼 한라산을 바라보며 오후에 한라 수목원을 갈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선 일주일 전부터(혹은 한 달 전부터) 일주일의 계획을 세웠지만 여기서는 아침에 먼 한라산을 보며 즉흥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우리 집에 안 쓰는 의자 두 개가 있었다. 빌트-인 가구들과 함께 인테리어 되어 있던 의자들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당근 마켓이라는 곳을 통해 의자와 테이블을 새로 구매했다. (카페를 열려다가 그만두신 분께 테이블 4개를 구매했고 다른 분으로부터 의자 10개를 추가 구매했다.)

그리고 쓰지 않는 의자 두 개를 싸게 팔까 생각하다가 그냥 나눔 하기로 했다. 아침에 글을 올렸는데 여러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제일 먼저 연락 주신 분께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한 부부가 의자를 가지러 왔다. 육지에서 오신 목사님 내외라고 하셨는데 의자 두 개를 좋은 일에 쓰시겠다고 하시면서 선물로 천연 꿀을 주셨다. 그냥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드린 것뿐인데 큰 선물을 받아서 감사하면서도 받아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넉넉한 마음이다. 할머니께 좋은 꿀을 드릴 생각에 더 행복해졌다.

그냥 창밖을 보자니 몸이 근질거려서 햇빛 받으러 마당으로 나가려는데 우리 집 문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런 작은 창문이 언제 나있었지? 서울 집에선 동그랗고 작은 렌즈를 통해 현관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작은 네모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초인종을 누르면 집 안 모니터를 통해 밖을 볼 수는 있지만.)


마당에 나와서 그동안 자세히 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살펴봤다. 총 네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한 그루는 마치 죽은 것 같이 앙상하다. 두 그루는 같은 종인 것 같은데 연두색 잎들이 빳빳하게 달려있다. 한 그루는 나무인지도 모르는 식물인데 낮은 야자나무같이 생겼다. 결론은 이 4 총사의 이름을 하나도 모른다.
나중에 꽃이 피면 알 수 있을는지.

마당 곳곳을 살피는데 옆집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오셨다. 이웃을 만나는 기쁜 순간이다. 옆집은 제주도 애월? 에서 가족 전체가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같은 분께 집을 구매한 것이라서 집에 들어간 소재도 비슷하고 느끼고 있는 집의 문제점(불편사항)도 같았다. 나중에 보수 공사할 때에는 같이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가족 모두를 뵙고 제대로 인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12시. 나는 내 아지트로 향했다. 책 좀 읽고 오려고 한다. 카페 가는 길, 이웃집의 예쁜 강아지, 신비가 쳐다본다. 너도 참 심심하겠다.

내가 아지트로 정한 카페에는 여전히 손님이 나밖에 없다. 자리는 많은데 이상하게 내가 늘 앉던 곳에 앉는다. 오늘은 크랜베리 베이글에 크랜베리 크림을 주문했다. 역시 치즈크림은 맛있다.


3시 반 즈음. 계획했던 한라 수목원에 가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버스를 타고 한라 수목원에서 내려도 되지만 요즘 운동량이 부족해(거의 집에 있고 차로 밥 먹으러 가니까) 한라 수목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인적이 드물어 아직 인도가 잘 닦이지 않아서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그래도 차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차도 바로 옆 비포장 샛길을 아슬아슬 걸어갔다. 가끔 주먹 하나 넓이의 길이 나와서 무섭긴 했지만 걸어가면서 자연을 눈으로 코로 피부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영(많이) 걸었다. 어둑어둑해졌음을 간과했다. 큰길에서 택시를 탔어야 했다.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택시를 잡을 수가 없을뿐더러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위기의 구간. 포장되지 않은 찻길 옆 비포장 샛길. 밤이 되니 깜깜했다. 도로가 정비되지 않으니 가로등도 없다. 앞뒤로 지나가는 차들의 라이트만 바람처럼 지나갈 뿐이다.
무서웠다. 택시 탈걸...
어쩔 수 없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마치 조난당한 사람처럼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디뎠다. 시간을 재 봤는데 한라수목원 초입에서 우리 집까지 27분이 걸렸다. 그 27분이 내게는 한 시간 같았다.
다시는 어두울 때 걸어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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