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느끼고 세상을 느끼면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잘 사귀어 나가야만 한다. 그것은 엄청난 정신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고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딪치지 못했다. 번민하면서 주저하는 내게, 세상이 먼저 부딪쳐 왔다. 세상은 나더러 체념하거나 굴복하라고 했고 나는 거절하고 저항했을 뿐이다. 부당한 강요에 굴복하면 삶이 너무나 비천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과 품격을 지키려고 발버둥 쳤다. 성년이 된 이후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한 감정은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더 훌륭해져야 한다. 여태껏 오로지 남을 위해 산 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인생은 훌륭할 수 없다는 관념에 눌려서 산 것만은 사실이다. 무엇에선가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때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곤 했다. 생각해보면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누군가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부터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 않고 그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고 싶다.
-열등감은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단연 고약한 것이다. 열등감에 빠지면 기쁜 삶을 살지 못한다. 기쁘지 않은 삶은 훌륭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너무나 많다. 도전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인생을 소모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모든 나무를 올라야만 행복한 삶,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적합한 나무를 골라야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을 후회 없이 즐길 수 있다.
-상처 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 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세상을 저주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삶이 사랑과 환희의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