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 다른 세계

같은 도시, 같은 동네, 완전히 다른 의료

by 송리나 Lina Song


미국 보스톤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시절,

나는 매일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 (MGH)로 출근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

시스템이 돌아가고, 의사결정이 빠르고, 환자가 기다리지 않는 곳.

아이도 거기서 치료를 받았다.

최고의 의료진, 최고의 장비, 최고의 결과.


그때 나는 '의료 불평등'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논문으로 읽었고, 통계로 분석했고, 학회에서 발표했다.

나는 늘 좋은 병원, 좋은 대학 안에서 이 문제를 '연구'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아이가 갑자기 아팠다.


새벽 2시. MGH는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뛰어갔다.

케임브리지, 같은 동네에 있는 작은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대기실이 넘쳤다.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환자들은 — 오늘 밤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데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몇 시간을 기다렸다.


아이는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그 병원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좋은 보험이 있었다. 평소에는 MGH를 갔다.

이 병원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병원은 메디케이드(미국의 저소득층 의료보험) 환자가 몰리는 세이프티넷 병원이었다.

재정적으로 힘들고, 항상 인력이 부족하고, 그런데도 수천 가구에게 유일한 선택지인 곳.


그날 그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영웅적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들에게 충분한 도구를 주지 않았다.

데이터가 없어서가 아니다. 데이터는 있었다.

차이는 — 그 데이터를 가지고

'스태핑을 어떻게 짤지,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할지,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돈 많은 병원에는 그게 있었다. 이 병원에는 없었다.


같은 동네인데.






그 밤 이후, 나는 논문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교과서에서 배운 '의료 불평등'은 통계였다.


그날 밤 본 것은 사람이었다.


아이를 안고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엄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건너가 회사를 만들었다.

병원과 공공기관이 가진 데이터를 가지고,

더 나은 운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실제로 배포했고, 실제로 계약이 이루어졌고, 실제로 작동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위스콘신 매디슨. 미국 헬스케어 액셀러레이터.

미국 병원을 위한 첫 번째 파일럿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병원은 MGH 같은 곳이 아니다.


그날 밤 우리를 받아준 병원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