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위스콘신에 왔다

병원 운영을 바꾸려는 사람이 서야 할 자리에 대하여

by 송리나 Lina Song

나는 지금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 산다. 8주짜리 미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들어와 있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냐고. 왜 뉴욕이 아니냐고. 미국 진출이면 투자자가 있는 곳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투자자를 만나러 간다면.


나는 병원을 만나러 왔다.






매디슨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Epic Systems 본사가 있다. 미국 병원 전자의무기록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회사다. 그 옆에 UW Health가 있다. 위스콘신 대학 병원 시스템이다. 이 도시는 미국 병원 운영의 인프라가 만들어지는 곳 중 하나다.


나는 그 인프라를 대체하러 온 게 아니다. 그 인프라 위에 빠져 있는 한 층을 만들러 왔다.


병원에는 데이터가 있다. 대시보드도 있다. 리포트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 결정을 내렸는가"를 구조적으로 기록하는 곳은 거의 없다. 어떤 가정 위에서, 어떤 제약 아래서, 어떤 조건이 바뀌면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를 남기는 시스템이 없다.


나는 그 층을 만든다.






한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정부 사업을 하다가, 병원 프로젝트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좋은 분석은 많다. 좋은 모델도 많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 결정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


결정은 근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산이 있고, 일정이 있고, 사람이 있고, 책임 소재가 있다. 그 모든 것이 얽힌 상태에서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구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데이터도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구조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한다.






매디슨은 조용한 도시다. 인구 28만. 호수 두 개 사이에 놓인 작은 도심. 밤 9시면 거리가 비는 곳이다.


그런데 이 조용한 도시에 미국 병원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서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병원 안에서 17년 동안 운영 분석을 했던 사람. 병원에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팔아본 창업자. 위스콘신 헬스케어 생태계를 연결하는 사람들.


나는 지금 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피치를 다듬고, 질문을 바꾸고, 내가 모르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창업자가 가야 할 곳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나한테 그곳은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병원 옆이었다.


그래서 나는 위스콘신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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