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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Aug 29.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5화

도대체 치약은 왜 아무 데도 없는 걸까?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자 거리두기 단계를 높이고 있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 곳 쿠바도 0명까지 내려갔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수가 다시 늘어나자 아바나는 8월 7일부터 자가격리 단계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 달 남짓 운행하던 대중교통이 또 한 번 멈추게 되었다.


하루 확진자가 50명이 넘던 날 남편과 나는 측근에게 대중교통이 곧 멈출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 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부자동네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식품과 세제뿐만 아니라 가전제품까지 모두 한 곳에 있는 마치 자본주의 국가의 어느 마트 같은 달러 상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의 버스를 타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워낙 크고 한 곳에서 다양한 걸 판매하다 보니 그 상점은 코로나 전에도 늘 사람이 많아서 계산을 하는 데에만 한 시간 정도 줄을 서야 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상점은 달러 상점으로 변모를 하였다.


변모 후 다른 곳에 가는 길에 살짝 들러서 확인을 해 보았더니 그동안 쿠바에서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던 새로운 물건들이 내 눈에 쏙쏙 들어와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곳은 아바나의 어느 달러 상점도 따라올 수 없는 그야말로 달러 상점의 지존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바구니를 여러 개 챙겨서 제대로 마음을 먹고 간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한 줄로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이었다. 남편은 줄을 보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고 그래도 가겠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나긴 줄을 보는 순간 나도 흠찟했지만 남편에게 일단 가보자고 했다. 우리와 비슷한 때에 도착한 사람들도 다 들 우리처럼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듯했다. 줄은 코너를 돌아서까지 계속되었고 그 모습에 나도 포기하는 마음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달러 상점 줄 / 건너편 부자 마을 풍경


나) 자기, 줄이 너무 기네.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할까?
남편) 모르지. 아마 2~3시간은 기다려야 되지 않을까?
나) (한숨을 푹 쉬며) 안 되겠다. 혹시 이 근처에 다른 데 갈 만한 데는 없을까?
남편) 자기, 엊그제 올란도(남편의 사촌)가 와이프랑 바닷가 앞에 있는 멋진 바에 갔다는 얘기 기억나? 거기가 바로 이 근처야. 이 길 건너서 조금만 가면 있어.
나) 아 그래? 그럼 우리 거기나 갈까?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는 허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근처 어딘가라도 가고 싶었다. 마침 도로를 건너면 멋진 바와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마음으로 도로를 건넜다. 그런데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줄이 성큼성큼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저것 좀 봐. 줄이 성큼성큼 줄어들고 있어!”


상점이 워낙 크다 보니 다른 작은 상점에서는 한 번에 한 두 명 혹은 네 다섯 명씩 들여보내는 데 반해 이 곳에서는 스무 명씩 입장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편에게 다시 가서 줄을 서자고 말했다. 남편도 줄어든 줄을 보더니 알겠다고 했다. 여전히 줄은 길었지만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나마 벽 쪽으로 그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이 누구인지 확인한 후 그 뒤에 줄을 섰다. 줄을 서자마자 나는 시간을 기록해 두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앞사람, 뒷사람을 살펴보다 보니 생수통에 얼음을 꽁꽁 얼려와서 얼음물을 파는 수단 좋은 한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저 아주머니는 틈새시장을 잘도 공략했네.’라고 생각을 하며 아주머니를 한참 관찰하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여긴 내가 서 있을 테니 자기는 길 건너 바닷가 앞에 있는 바에 가서 열었는지 한번 보고 올래? 만약 열렸으면 여기서 장보고 나서 거기에서 점심 먹으면 딱 좋을 거 같아.”


“자기, 내가 말했지만 지금 같은 시국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좀 아닌 거 같고 열려 있으면 음료나 한잔 하자.”


“응, 알겠어. 일단 다녀와봐.”


시계를 보니 12시가 안 되어 어차피 밥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정말 길만 건너면 있는 곳인지 남편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자기, 문 열었어. 근데 저기 엄청 좋아. 마치 바라데로(쿠바 최대의 휴양지) 같아.”


“정말? 아.. 빨리 가고 싶다.”


바라데로 같다는 말에 설레기 시작했다. 바닷가 앞에 살면서 매일 바다를 보지만 방파제가 있는 말레꼰 바다는 그저 바라만 보는 바닷가이지 휴양지의 바다가 아니라서 바라데로 같은 휴양지 바다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 많던 줄이 쑥쑥 줄어 들어서 우리는 줄을 선 지 약 한 시간여 만에 아바나에서 가장 큰 달러 상점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물품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개선장군이라도 된 마냥 아주 당당하게 안으로 입장하였다. 처음에 나를 반긴 건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종류별 샴푸였다. 지난번에는 없었던 청소 용품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쿠바에 와서 지난번에 처음 본 딸기와 바닐라 우유에 이어 이번에는 초코 우유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커피가 있었다. 쿠바인들이 요즈음 수소문을 하면서 찾으러 다니는 그 귀한 커피였다.


냉장/냉동고가 있는 곳에 가 보았다. 치즈와 소고기는 물론이고 냉동 생선이 있었다. 그것도 종류가 무려 세 가지였다. 역시 지존 다웠다. 이 곳은 물건을 담는 카트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서 내가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있는 동안 남편은 줄을 서서 카트를 구해왔다. 카트가 도착하자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가장 큰 달러 상점 내부


얼핏 보면 동태같이 생긴 생선부터 돼지고기 햄버거 패티, 대용량 바디젤(샴푸는 충분하니까), 에코 퐁퐁과 에코 섬유유연제 두 개씩, 딸기, 바닐라, 초코 우유도 각각 세 개씩 담았다. 1킬로짜리 꾸비따(Cubita) 커피도 세 봉지나 담았다. 비쌌지만 커피를 좋아하시는 할머니도 한 봉지 드려야 했기에 충분히 산 것이었다. 꾸비따(Cubita) 커피는 쿠바에서 최고의 커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수출을 하는 커피이다.


정어리 통조림이랑 대용량 식용유, 처음 보는 과자들과 청소용품도 담았다. 카트가 한가득 차 버렸고 더 이상 담으면 들고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했더니 가뿐히 기록 경신을 해 버렸다. 이 곳 계산원들은 확실히 다른 상점 계산원들보다 카드를 다루는 게 능숙하였고 정보도 일일이 기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곳에도 치약은 없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왜, 무엇 때문에 그 흔한 치약이 아바나의 어떤 상점에도 없는 것일까? 나는 치약이 충분하지만 벌써 몇 개월째 치약이 없어서 많은 쿠바인들이 소금으로 양치를 한다고 했다. 너무 궁금하다. 치약이 없는 이유가. 화학성분이 안 좋으니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소금으로 양치를 하라고 의도적으로? 설마! 그건 절대 아닐 테다.


아무튼 그런 궁금증을 알고 상점을 나온 우리는 남편이 물품보관소에서 찾아온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가져간 에코백을 다 꺼내어 남편의 큰 가방과 에코백들에 물건들을 나누어 담기 시작했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과연 다 넣을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모두 가방 안에 들어갔다.


보통 이 정도의 물건을 사면 곧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니 그곳을 꼭 가보아야 했다. 무거운 걸 낑낑 대며 길을 건넜다. 멋진 바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래 봐야 짐 때문에 아주 빠르지는 못했지만.








잠시 걷다가 또 한 번 길을 건너니 색다른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남편이 말한 그 장소였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짐을 들고 바닷가 쪽으로 마구 다가갔다. 바닷가 앞은 너무 예뻤다. 아바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무거운 가방들을 잠시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잠시 바닷가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로움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서로 소리를 지르고 웃으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바라데로처럼 완전 모래만 있는 것 아니었지만 충분히 물놀이를 할 만했다.


이런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충분히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무거운 가방들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잠시 휴식을 취할 장소로 향했다. 세 개의 건물 중에서 나는 가장 사람이 많고 예뻐 보이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리가 도착을 하자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청년이 양 손에 보따리를 들고 있는 우리를 아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는 손 세정제를 뿌려주었고 일층과 이층 테라스 중 어디를 가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층 테라스로 올라갔다.


코로나 시기답게 모든 일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코로나 발생 이후 폭우가 쏟아져서 어쩔 수없이 근처 식당에 간 것 이외에 우리 발로 걸어서 술이나 음식을 파는 곳에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코로나 기간인 데에도 손님들이 삼분의 이 가량 차 있었다. 테이블마다 간격이 충분했음에도 괜히 불안한 마음에 나는 마스크를 제대로 고쳐 메었다.


메뉴판을 보니 남편이 좋아하는 피자가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기, 피자 하나 시켜서 같이 먹는 거 어때?”라고 했더니 분명히 밖에서 식사는 안 한다던 남편이 메뉴판을 슬쩍 보았다. 그러면서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길래, “그럼 하와이안 피자 시킬까?”라고 했더니 그제야 메뉴판을 다시 보고는 콰트로 치즈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무척이나 치즈를 사랑하는 남편은 네 가지 치즈들이 토핑이 된 콰트로 치즈 피자가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고 주문을 했다.


“콰트로 치즈 피자 하나, 다이끼리 한 잔 그리고 스프라이트 하나 주세요.”


잠시 후 주문 한 음식들이 나왔다. 피자를 한 입 먹더니 남편은 감탄을 했다. 블루치즈 맛이 확 올라왔다. 맛있긴 해도 내 스타일은 그닥 아니었다. 그래서 남편이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나는 몇 조각 먹지 않았다. 대신 나는 오 개월 만에 마시는 다이끼리(칵테일)에 홀딱 빠져 있었다. 너무 그리웠어 다이끼리!


오개월만에 맛 본 청량한 맛의 다이끼리


그곳은 마치 자본주의의 바닷가에 있는 어느 한 바를 옮겨놓은 것처럼 인테리어며 음식과 칵테일 수준이 훌륭했다. 그리고 오픈이 된 이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은 나를 마치 바라데로 휴양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눈부시게 햇살이 뜨거운 날, 지중해 물 색처럼 새파란 바닷가에서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이라니! ‘여기가 쿠바냐?’를 또 한 번 물어보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말없이 눈 앞에 펼쳐진 평화로운 광경에 넋을 놓았고 잠시 꿈을 꾼 듯한 그 순간은 우리의 탁자가 깨끗이 치워지면서 끝나버렸다.








이제 저 무거운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내 3G 핸드폰이 작동을 하여 쿠바의 우버인 택시 애플리케이션에 접속을 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일 년 전쯤 생겨난 이 애플리케이션은 데이터가 있고 인터넷이 연결이 되는 곳에서는 사용을 할 수가 있어서 나도 예전에 몇 번 사용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특히 밤에 혼자 집에 갈 때에는 아주 유용했다.


이 곳에서는 늘 택시기사와 흥정을 해야 하는데 외국인들은 호구라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앱은 그런 흥정을 하며 힘을 빼지 않아도 되고 안전하게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이점이었다. 가격은 일반 택시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쌌다. 이 편리한 애플리케이션 덕분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잠시 기다린 후 도착한 택시를 타고 편히 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쿠바에 여행을 오셨던 분들에게 이 애플리케이션 이야기를 하면 다들 깜짝 놀라실 것 같다.)


집에 도착을 해서는 바로 씻은 후에 달러 상점에서 장본 것을 정리하였다. 내가 동태인 줄 알았던 생선은 꺼내어 자세히 보니 오히려 참치에 가까웠다. 그래서 시원하게 동태탕을 해 볼까 하던 마음을 접고 냉동실에 있던 오징어와 새우를 꺼내어 해물탕을 만들어 보았다.


동태탕도 해물탕도 평생 해 볼 일이 없었던 나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얼추 비슷하게 해물탕을 해서 아주 더운 한여름 저녁에 남편과 땀을 뻘뻘 흘리며 맛나게 먹었더랬다. 해물탕을 보니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 생각은 또 왜 이리 간절한지. 하하


그리고 며칠 후 예상대로 자가격리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고 한동안 이 달러 상점도, 평화롭던 바닷가 앞의 바에도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요즘에도 매일 확진자가 많아서 언제 다시 해제 상황으로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어제 티브이에서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저녁 7시 이후에는 길거리에 다니지도 못하고 개인적인 부주의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이 되면 치료가 끝난 후 벌금에 감옥까지 갈 수가 있다고 했다.


제발 확진자가 줄어들어 차를 타고 멀리멀리 가서 콧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때 그 시절들이 그리워서.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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