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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03.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6화

비 오는 건 싫은데 우산은 좋아해요


그 날은 남편과 다른 동네 ‘주류판매점’에 와인을 사러 가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는데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가끔 와인 한잔 하는 여유는 누려야 그나마 살맛이 날 것 같았다. 아바나는 격리 기간에 재돌입 하여 대중교통이 없으니 남편도 나도 우산을 챙겨 쓰고는 뜨거운 태양을 요리조리 비켜가며 평소와는 반대방향의 말레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니 작은 상점이 하나 나왔다. 한때 종종 가던 곳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남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혼자서 들어가 보았다. 아주 작은 가게라 스캔하는 데 3초면 충분했다. 이렇게 작은 곳에도 손 세정제를 뿌려주는 아저씨가 계셨다. 정말 철저했다.


다른 건 이미 집에 있거나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고 초콜릿 바가 소복이 든 오렌지색 봉투가 눈에 띄었다. 상점 밖에 서 있는 남편에게 먹겠냐고 물어보았더니 당연히 먹겠다고 했다. 그렇지, 달달구리를 사랑하는 남편이 초콜릿을 거부 할리가! 이런 건 물어보지 않고 그냥 샀어도 되었다. 훗.


초코바 한 봉지를 사고는 스무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작년에 아바나 건국 오백 주년 기념으로 오픈을 한 인테리어 숍이 나왔다. 건물 옆을 돌아서 보니 역시 사람들이 한 줄로 쫘악 서 있었다. 남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자기, 저기 구경하고 싶어?”

“아니, 줄이 너무 길어. 이따가 오는 길에 들러보자.”


날은 덥고 줄은 길고, 게다가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이었던지라 목표를 달성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자고 하며 그냥 지나쳤다.






이 상점은 오픈하기 전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엄청 끌었던 곳이었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대부분의 건물들과 달리 새하얀 페인트로 곱게 단장을 한 이 건물은 멀리서 보아도 자본주의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아주 세련되어 보이는 상점이었다. 게다가 인테리어 상점이라니? ‘도대체 저곳에서는 무엇을 팔까?’ 나의 쇼핑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았다.


그곳은 2019년 11월 16일, 아바나 건국 오백 주년 기념으로 문을 연다고 했다. 아바나에서 오백 주년 기념일에 맞춰 문을 열려고 준비를 한 상점들이 이  곳 저곳에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상점이었다.


깔끔한 인테리어 숍 / 당시 건너편 풍경


드디어 그 날이 되었고 남편과 나는 이 상점은 명함도 내밀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명, 종합 쇼핑몰 오픈에 가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인파에 묻혀버릴 뻔하며 겨우 아바나 오백 주년 기념 맥주잔 하나를 사서(두 개를 사려고 했으나 하나뿐이었다.) 몇 시간 만에 집으로 오게 되었다. 약간 허무하기도 해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이 상점에도 가 보았다.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그곳은 들어갈 가능성이 보여 줄을 서 보았다.


아바나 건국 오백주년에 오픈을 목표로 오년 간 야심하게 준비한 종합 쇼핑몰-중국의 자본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땅 값이 저렴한 우범지대(?)에 위치해있다.
결국 수 많은 인파속에서 발생한 사고로 그 날 문을 닫아버린 종합 쇼핑몰 (좌) 뒤에서 인파들을 쳐다보고 있는 남편 (우) 하나뿐인 아바나 건국 오백주년 기념 맥주잔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줄을 선 후 들어간 그곳에는 ‘낚였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 만한 게 없었더랬다. 아바나 오백 주년 글씨가 새겨져 있는 비치타월 2장, 전구 4개(인당 2개씩만 팔았다)가 내가 산 물건 전부였다. 그 후 나는 이 인테리어 상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 우리는 더위에도 불사하고 꾸준히 걷고 또 걸었다. 쿠바는 배우 하정우가 쓴 [걷는 사람]이 참 잘 어울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냥 제목만으로 느끼는 감성이랄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줄이라고는 달랑 네 명이었다. 쿠바인 두 명과 중국인 커플이 다였다. 이 곳의 주요 품목은 수입 와인과 고가(?) 주류여서 먹고사는 게 관건인 요즈음에 이 곳은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간혹 물이나 주스, 우유, 커피 등 쿠바인들에게 필요한 걸 판매하기라도 하면 줄이 길 테지만 말이다.


내부를 한번 훑어 보았다. 살 만한 와인이 눈에 띄었다. 너무 더운 여름이고 집에 새우, 오징어 그리고 생선 등의 해산물이 있으니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 와인 세 병과 레드 와인 두 병을 바구니에 담았다. 와인을 담고는 옆을 보니 아바나 클럽 럼 진열장에서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련된 디자인의 새로운 아바나 클럽 럼 하나를 발견했다.


“자기, 이거 본 적 있어?”

“아니, 처음 봐.”

“병도 너무 예쁘고 스모키? 대체 뭘까 궁금한데? 한 병 살까?”

“응, 좋아!”


그렇게 와인 다섯 병과 처음 본 아바나 클럽 럼까지 한 병 해서 총 여섯 병의 알코올을 가지고 계산대로 갔다. 그리고 계산원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 이 아바나 클럽은 처음 보는 건데 새로 나온 거예요?”

“나온 지 일 년 정도 된 건데 (남편을 보며) 이거… 맛이 끝내줘요!”


나중에 찾아보니 작년 11월에 론칭 한 새로운 럼이었다. 젊은 이들을 타깃으로 스카치위스키와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발표한 날짜를 보니 오백 주년 기념으로 만든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의 대표적인 럼 브랜드인 아바나 클럽은 프랑스의 주류회사인 페르노리카가 49프로의 지분과 함께 해외 수출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파리에 사는 한 지인이 새로운 아바나 클럽 럼을 파리 이곳저곳에서 홍보하는 걸 많이 봤다며 나의 SNS에 댓글을 남겨주었다. 이 아바나 클럽 럼은 다른 아바나 클럽 럼과 달리 병에 모든 게 영어로 적혀 있어서 뭐가 다르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국내 판매용이 아닌 듯했다.


새로 나온 아바나 클럽 럼-젊은이들을 타겟으로 했다고 하며 모든 게 영어로 적힌 수출용이었다. 남편이 마셔보더니 엄청 맛나다고 하였다.


계산을 하고는 남편이 네 병을, 내가 두 병을 들었다. 이런 무거운 물건들을 살 때면 한국의 배달 시스템이 참 많이 그리웠다. 가방에 병들을 잘 넣은 후 주류판매점을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여기 잠시 들어가 보자.” 옆에 있는 옷 가게에 잠시 들어가 보자고 했다. 잠시 줄을 서 있었을 때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그곳의 문을 열었다. 주류판매점도 이 옷가게도 모두 ‘아바나 리브레(Habana Libre)’라고 불리는 특급호텔 옆에 있는 상점들이라 주 고객이 외국인들인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외국인들이 없으니 이 곳들이 아주 조용한 것이었다.


스페인 회사에서 쿠바 이미지의 옷과 가방, 액세서리 등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이 옷 가게는 내가 쿠바에서 본 옷 가게 중에서 디자인과 색상 그리고 품질이 최고인 곳이었다. 그 날 나의 관심사는 옷이 아니었다. 천정에 걸려있는 우산이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별로 안 좋아한다. 대부분의 비 오는 날에는 구름이 끼고 구름이 끼면 날씨가 흐려지니 마음까지 흐려지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나는 해가 쨍쨍한 날을 좋아한다. 바로 카리브해의 이런 날씨.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산은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예쁜 우산을 보면 몹시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싶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우산이 가진 그 의미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내가 너를 보호해 주겠다는 그런 의미를.


예전에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 생가에 갔을 때에도 모네의 그림이 담긴 우산만 2개를 사 가지고 왔더랬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쿠바에서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너무 소중한 우산이라 바람이 심한 이 곳에서는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세 개의 우산들이 모두 다 예뻐서 그 자리에 서서 한참 고민을 했더랬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두 개를 구입했다. 접는 우산 하나와 장우산 하나. 노란 올드카가 그려진 접는 우산은 가방에 넣었고 장 우산은 바로 쓰기로 했다. 어여쁜 쿠바 언니가 멋들어지게 그려진 이 우산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새로 산 우산을 쓰고 걷자 사람들이 모두 내 우산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하얀 바탕이라 햇볕이 아주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곳은 가릴 것만 된다면 우산이든 양산이든 상관없이 쓸 수가 있고 나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이런 자유로움이 좋았다. 우산을 사고는 너무 좋아하는 모습의 내가 귀여운 지 남편이 보더니 빙긋 웃었다.


(좌) 남편 핸폰의 사진을 그대로 찍었더니 화질이 매우 안 좋음(죄송합니다) / (우) 노란 올드카와 카피톨리오가 그려진 접힌 우산


여전히 햇볕은 뜨거웠고 등줄기로 땀은 비 오듯 쏟아졌지만 나의 발걸음은 사뿐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인테리어 숍에 다시 다다랐다. 남편이 또 물어보았다.


“자기, 여기 가 보고 싶어?”

“잠깐만, 자기!”


통유리창 앞으로 가서는 유리에 얼굴을 바싹 대었다. 그리고는 상점 안에 뭐가 있는지 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식탁과 의자들이 진열이 되어 있는데 다른 데서 보던 것들과 달리 모던하고 심플한 것이었다.


‘우왕, 쿠바가 정말 변하고 있긴 있나 보네. 이런 심플한 디자인의 식탁이라니!’


그리고는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나 여기 들어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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