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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05.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7화

갑작스런 식탁 구입


제6화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lindacrelo/103


남편에게 말을 하고는 사람들이 서 있는 줄을 따라가 보았다. 줄이 아주 길지는 않아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마지막이 누구인지 확인 후 남편과 나도 벽에 기대어 줄을 섰다. 우리는 술이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별로 볼 것도 없는 핸드폰을 꺼내었다. 줄을 설 때마다 하는 의식 인양 남편은 이어폰 볼륨을 높이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는 데에도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곧이어 우리 몇 사람 앞에 줄을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난 가야겠소. 내 앞사람은 이 사람이오,”라고 말하며 뒤에 있는 아저씨에게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는 길 건너편에 세워진 하얀색 차를 몰고 떠나 버렸다. 차가 있는 그 아저씨가 멋지게 쌩하고 떠나는 게 부러워서 아저씨를 한참 쳐다보았다.


통 줄어들지 않는 줄을 보니 분명히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경찰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확실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남편은 꿋꿋이 기다렸다. 그 아저씨가 떠나고 잠시 후부터 줄이 조금씩 줄이 들기 시작했다. ‘문제가 해결됐나 보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곳은 한 번에 다섯 명씩 들여보내 주었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 차례였다. 그런데 우리가 줄을 서 있던 그곳에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완전 땡볕이 되어 버렸다. 우산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정의감을 장착한 남편이 나서서 줄을 관리하는 아주머니에게 부탁드렸다.


“아주머니, 보시다시피 이제 땡볕이에요. 그런데 이 쪽은 그늘이니 다 들 그늘로 옮기게 해 주세요!”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상사의 지시가 없이는 그럴 수 없다며 남편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몇 번을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저 사람이 내 상사니 그에게 말해봐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상사를 불렀다. 아래 위로 하얀 옷을 입은 까만 아저씨가 왔다. 남편은 상사라는 그 남자에게 다시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남편의 얘기를 듣자마자, “아, 아까는 그늘이었는데 벌써 해가 들어왔네 보네. 그럼, 옮겨야지.” 라며 아주 쿨하게 그늘로 와서 한 줄을 서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이봐요 가족들(이 곳은 표현이 참 친근하다), 다 들 그늘로 와서 줄 서세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늘로 와서 줄을 섰다. 괜히 혼자 남편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문이 열리고 손 세정제가 내 손을 소독하였다. 손을 닦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았던 식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원목이 아니라 합판이었다. 그래서인지 가격도 저렴했다. 아주 심플한 식탁들이 두 가지의 색상으로 나눠져 있었고 종류도 4인용과 6인용 두 가지가 있었다. 의자는 네 종류가 있었다. 가격은 두 가지였는데 내 눈에는 꽃무늬 의자 하나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의자 하나가 식탁 테이블보다 더 비쌌다. 원래 의자가 비싸기는 해도 꽤나 비쌌다. 한국은 식탁을 세트로 판매를 하지만 이 곳에서는 모두 다 따로 사야 했다.


달러 상점이 생기고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공식적으로 몇 군데가 있었지만 가구를 판매하는 곳은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식탁을 사려고 했던 유일한 가구점은 아바나가 3월에 격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곳에 있던 물건들이 이 곳으로 옮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무늬 의자를 예전에 그 가구점에서 보았는데 지금은 이 곳에서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희소식. 이 인테리어 숍도 달러 상점이라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듣자 식탁세트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리 계획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식탁을 사려고 여러 루트를 통해서 식탁과 침대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서 못 사고 있었던 참이었다. 게다가 더운 날 다시 이 곳에 와서 두 시간 동안 줄을 서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에 왔을 때 이 식탁과 의자가 이 곳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할 수도 없었다.


남편도 식탁을 마음에 들어했다. 심플한데 가격도 저렴했으니. 꽃무늬 의자 가격을 보고는 놀래서 잠시 충격을 받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함께 식탁을 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널찍한 6인용 식탁에서 편하게 글도 쓰고 밥도 먹고 싶었으나 공간이 허락지 않을 듯하여 4인용으로 결정을 하고 색상도 정하였다.


의자가 문제였다. 4개를 모두 꽃무늬로 할 것인지 아니면 2개만 꽃무늬로 하고 나머지 2개는 단색으로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단색 의자는 재질이 비닐 같은 건데 가격은 꽃무늬 의자와 동일했다. 그런데 아이보리색의 패브릭이 바탕인 꽃무늬 의자보다 확실히 때는 덜 탈것 같았다. 심히 고민이 되었다. 저렴한 가격이 아니어서 더 신중히 고민이 되었다. 나는 잠시 로댕이 되었다.



그래, 결심했어!



좀 어지러워 보이고 나중에 때가 타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을 하기로 하고 결국 모두 같은 패브릭 꽃무늬 의자로 하기로 결정을 했다.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점원들은 내가 최종 결정을 하자 분주해졌다. 나는 의자 4개를 직접 골랐고(조금이라도 상처가 없는 것으로) 점원들은 내가 고른 의자들을 두 개의 큰 박스에 나누어 넣기 시작했다. 식탁세트뿐만 아니라 우리는 전구와 샤워실 커튼 봉 그리고 샤워실 미끄럼 방지 발판과 쿠션도 구입을 했다. 또 한 번 시원하게 카드를 긁었다. 치이이이이익. 남편은 도와준 점원에게 팁을 주었다.


문제는 배송이었다.

카드를 화끈하게 긁기는 했는데 이제 저 물건들을 어떻게 들고 가나? 지난번에도 얘기를 했듯이 쿠바는 배송 시스템이 없어서 내가 산 물건은 내가 알아서 가져가야 했다. 특히나 지금은 대중교통도 막힌 상태였다. 다행히 남편은 내가 식탁을 결정하자마자 차가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차 크기가 작은 그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남편에게 보내 주었다. 하지만 도착한 친구의 차는 오래된 승용차로 식탁과 의자 4개를 옮기기에는 너무 작았다. 남편은 한참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을 하더니 결국 그 친구를 보내었다. 그리고는 차를 구해서 돌아오겠다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갑자기 남편이 사라지자 나는 인테리어 숍 앞에서 식탁과 의자가 담긴 상자 옆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사람들 구경만 하면서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쿠바 아주머니들은 저 치나(중국 여성-아시아 여성을 뜻함) 옆에 있는 상자 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면서 지나갔고 몇몇 아주머니들은 혹시 냉동고냐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는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냉동고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냉동고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삼 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남편이 아주 낡아서 폭삭 가라앉을 것만 같은 올드카를 타고 나타났다. 내가 보기에 남편이 타고 온 올드카에도 박스 세 개가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금지되면서 자동차 구하기가 아주 힘들어지자 남편은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차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차는 공사 현장까지 두 번을 왕복한 후 박스 세 개와 나까지 모두 옮길 수가 있었다. 남편이 왕복을 하는 동안 나는 또다시 상자들을 지키며 그곳에 서 있었다.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상자들은 모두 공사하는 집으로 무사히 옮겨졌고 우리는 그제야 숨을 돌리게 되었다.


심플한 식탁과 꽃무늬 의자-이만한 것 찾기도 힘들다:-)


점심 전 오전에 나갔는데 왔다 갔다 하며 줄을 서고 물건을 사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흘러 흘러 어느 듯 늦은 오후가 되어 있었다. 또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식탁과 의자를 샀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참, 이쁜 우산도 두 개나 샀지. 하하








다음 날 공사 현장에 가서 박스에 담긴 의자를 꺼내어 보니 집이랑 꽤나 잘 어울렸다. 때 타는 것 때문에 단색 의자를 2개 섞자고 했던 남편도 의자를 보더니 너무 예쁘다며 나의 안목을 칭찬해 주었다. 남편은 실용성을 앞세우고 나는 디자인을 우선시하는데(실용성도 물론 본다) 일단 지금은 디자인이 ‘승’인 듯하다.


아, 식탁까지 샀으니 이제 침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침대는 언제 살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기약이 없다. 대중교통도 없는데 9월 1일부터 보름 동안 특별 강화 시기로 지정을 해서 제대로 통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통행금지, 노인과 어린이 외출 금지, 개인 승용차 주유 금지, 마스크 미착용 및 잘 못 착용한 경우(턱이나 목에 거는 것)에 벌금이 2,000 CUP(약 십만 원)에 감옥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개인의 잘못(가족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한다거나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경우)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경우에는 일단 치료를 해 준 다음 벌금을 물고 감옥을 간다고 했다. 역시 공산당은 통제를 심하게 한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9월 1일부터 학교 수업도 다시 시작을 했는데 아바나는 제외다. 사람들 말로는 쿠바는 11월 3일, 미 대선까지 닫혀 있을 거라고 한다. 올해 한국에 가겠다는 생각은 이미 버렸기 때문에 문을 열든 닫든 크게 상관은 없는데 먹고사는 데에만 지장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히도 달러 상점 덕분에 아직까진 참 잘 먹고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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